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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16.06.18 15:15
  • 호수 1113

다단계 하청…떠넘기는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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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화력 감전사고로 2명 사망·1명 전신 50% 화상
고압차단기 점검 중 세 하청업체 직원 사고
연이은 산업재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직원들

또 죽었다. 또 하청업체 직원이다. 지난 4월 당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20대 하청업체 직원이 분쇄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망한지 고작 2개월 만이다.

지난 3일 오후 4시 40분 경 당진화력발전소 1호기 전기실에서 6.9kV 고압차단기 점검 중 전기감전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두 명이 죽고 한 명이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다.

사고 발생 일주일 전 서울 구의역에서는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어 지난 1일에는 남양주시 지하철 진접선 공사 현장에서 폭발 사고로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대기업이나 기관의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원청에서 하청으로, 또 다시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속칭 ‘다단계 하청’이 사회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위험한 작업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안전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하청에 하청, 위험한 아웃소싱

이번 당진화력발전소 작업 역시 하청에 하청을 주는 아웃소싱 형태로 이뤄졌다. 당진화력은 고압 및 저압 기기, 개폐장치 등을 제작하는 (주)비츠로테크에 하청을 줬다. 비츠로테크는 기계 설치 작업을 다시 광명기전이라는 업체에 재하청을 줬다. 사고 현장에는 당진화력이 하청을 준 전력설비 정비를 전문으로 하는 한국전력공사 계열사인 한전KPS 직원이 함께 있었다. 사고 현장에 원청인 당진화력과 세 개의 하청업체 직원이 함께 있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동서발전 측은 “앞으로 인명피해가 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현재 원격 시설을 알아보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이 죽은 상황에서 어디까지나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열악한 환경에 내몰리는 근로자들

당진화력 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현장에서는 원청이 하청업체에 상당수의 공정을 맡기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원청은 저가낙찰제로 하청업체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사 비용을 최대한 절감해야 하는 하청업체는 인건비를 줄여 적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열악한 업무환경에 근로자들은 수시로 바뀐다. 작업 숙련도가 떨어지는 노동자들의 안전은 결국 뒷전이다. 이들은 결국 목숨을 담보로 일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에 발표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에 의하면 하청업체 근로자 절반 가량이 ‘안전조치 없이 작업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 사망자 중 하청업체 노동자 비율은 2012년 37.7%였던 것에 비해 지난해 40.2%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경우 산업재해 발생 시 ‘기업 과실치사 및 살인법’으로 원청업체에 ‘상한선 없이’ 벌금을 물리는 등 높은 수위로 처벌하고 있어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지만 국내의 경우 산업재해 발생 시 원청업체의 책임을 요구하는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다.

꼬리 물기식 하청, 책임도 하청에?

게다가 꼬리 물기식으로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경우, 사고에 대한 책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역시 원청인 동서발전은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 현장 감식을 진행하고, 고압차단기 점검 작업 중 문제가 있었는지, 또는 기계에 결함이 있었는지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작업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광명기전에 하청을 준 비츠로테크의 잘못이 커지며, 기계에 결함이 있다고 해도 기계를 제작한 비츠로테크에 또 다시 책임이 가중된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한전KPS 직원 이모 씨의 시신을 운구하는 과정에서, 병원비는 이 씨의 회사인 한전KPS도, 원청인 동서발전도 아닌 비츠로테크가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한전KPS는 원청인 당진화력의 눈치를 보고, 원청은 책임이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한전KPS 측은 “직원 이 씨는 사고 피해자로, 수습과정에서 우리가 능동적으로 움직이기는 어렵다”며 “비상체제를 유지하며 24시간 유족 측과 함께 있으려 하고 직원 간 유족보상금을 별도로 마련, 산재 처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도 대책도 無

이 씨의 유족들은 아직도 업체 측으로부터 사고에 대해 정확히 들은 바 없다. 사고 직후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로 옮기며 한전KPS와 동서발전에 사고에 대해 물어도 제대로 답변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청업체 직원 3명이 연루된 것도 중환자실에서 기다리던 가족들끼리 대화하다 알게 된 것이다.

사과도 없었다. 유가족들은 “사고 직후 환자 측을 대하는 당진화력의 대처가 너무 부실했다”며 “영화 <내부자들>에서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들이다. 적당히 짖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것’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모습 같다”고 망연자실했다.

 

<당진화력에서 발생한 주요 산업재해>
2008. 08. 석탄 하역작업 중 부두와 선박 사이에 깔려 1명 사망
2013. 03. 9·10호기 건설현장 2명 추락 사망
2013. 10. 굴뚝 작업 중 2명 추락 사망
2014. 04. 보일러 내부 조명 설치 작업 중 1명 추락 사망
2015. 08. 9호기 변압설비 화재
2015. 12. 9호기 시험운행 중 화재
2016. 04. 석탄 파쇄기에 20대 노동자 빨려 들어가 사망
2016. 06. 고압차단기 교체작업 중 3명 감전사고로 2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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