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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26 1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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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사람이라면 모두 동포”
대한민국 최초·최고 인정받은 실력

“조금 이따가 당진에서 플루트가 와요. 어제 전화가 왔어요. 플루트를 고쳐달라고 하는데 당진 사람이더라고요. 여기 채운동도 있고 여기 송악읍 반촌리에서 온 것도 있네요.”

그는 한쪽에서 택배 송장을 주섬주섬 꺼냈다. 옆에는 서울, 부산, 제주도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송장이 쌓여있다. 하지만 당진에서 온 주소지만큼은 옆에 따로 모아둔다.

신광악기 대표 지병옥 씨(77) 씨는 종로구 낙원상가의 터줏대감이다. 또 다른 말로는 국내 최초이자 최고인 플루트 수리 명장으로 불린다. 자타가 인정하는 플루트 장인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의 나이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고향 당진을 떠나야 했던 사연은 눈물겹다.
“내가 다시는 당진 안 온다”

지 씨는 송악읍 한진리 어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뒤로 동생만 여섯이다. 방 두 개에 부엌 하나 있는 흙집에 살았다. 아버지가 바람으로 움직이는 배를 타고 추자도 앞바다에서 전라도 칠산, 연평도까지 조기잡이에 나서면 넉 달이 지나서야 집을 찾았다. 시골에서 땅 하나 없이 살기란 버거운 일이었다. 맏아들이었던 지 씨는 바다로 떠난 아버지 대신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송악읍 광명리 고모 댁에서 여물지도 않은 고구마가 담긴 포대를  어깨에 메고 몇 시간이고 걸어서 한진까지 가져왔다. 참으로 가난했다.

송악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정말 ‘입 하나를 덜기 위해’ 고향 당진을 뒤로 해야만 했다. 당진을 떠날 때 그는 “너무 어렵게 살았기에 ‘다시는 당진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곳을 잊지 못해. 타향에서 죽을 때도 머리를 고향 방향으로 둔다고 하잖아. 나도 그렇지.”

동포라면 무조건 반값!

지금도 늘 가슴 저 깊은 곳에 있는 것이 고향, 당진이다. 그는 당진 사람이라면 모두 ‘동포’라고 부른다. 당진에서 악기 수리가 들어올 때면 무조건 반값이란다.

한 때는 가난이 지긋지긋한 당진이었지만 지금은 잊지 못할 곳이 됐다. 여전히 당시 다니던 송악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고향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지금 당진에는 아는 지인이 많지 않다. 어렸을 적 살던 한진을 가본 지도 20년이 지났다. 그는 “옛날 한진은 동력으로 움직이는 배도 없을 정도로 시골이었다”며 “지금 그 지역이 천지개벽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아직 한진은 내 추억들이 가득한 곳”이라고 말했다.

세공업에서 악기 수리사까지

17살에 종로구를 처음 밟았다. 집안 어른을 따라 금은방에서 세공업을 배우며 일했다. 그 당시에는 따로 악기 수리점이 없었다. 악사들이 금은방을 찾으면 그가 찌그러진 악기를 펴주거나 고쳐주기 시작하면서 이후 악기 수리로 전향했다. 이후 1974년 낙원상가가 생기고 그도 플루트를 전문으로 하며 상가에 입주했다. 그렇게 43년이 흘렀다. 악기를 손에 잡은 지 어느덧 60년째다. 이젠 플루트 한다는 사람 중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20년이 된 플루트도, 소리가 나지 않는 플루트도 그의 손길만 거치면 다시 살아난다. 그렇게 평생을 플루트와 함께 했다.

남은 시간 ‘9년 6개월’

그는 딱 9년 6개월만 이 일을 더 하겠다고 했다. 77세. 적지 않은 나이다. 그래도 그는 “요즘엔 85세까진 청년”이란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 일의 대를 잇는 것이 항상 고민이다. 두 아들이 있지만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그때 둘째 며느리 민경선 씨가 시아버지의 길을 걷겠다고 나섰다. 그는 “며느리가 대를 잇는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둘째 며느리에게 가진 재능 물려주면서 여생을 살겠다는 지병옥 씨다.
“악기는 알면 알수록 힘든 것이예요. 60년도 모자라죠. 적어도 우리 며느리에게 10년은 알려줘야 할텐데, 그러니 내가 9년 6개월은 더 일해야겠죠?”

>>지병옥 씨는
- 송악읍 한진리 출신
- 송악초등학교
   (옛 송악국민학교) 졸업
- 신광악기 대표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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