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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삼베 짜는 이정의 씨(고대면 슬항1리)
평생을 함께한 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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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수의도 직접 만들어 준비
전통 잇는 사람 필요해

날실과 씨실을 치는 북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오늘도 이정의(고대면 슬항1리·73) 씨는 청삼가공농장에서 베틀 앞에 앉아 베를 짠다.
이렇게 그는 반백년 가까이 삼베 짜는 일을 해 왔다. 이제 이 씨의 인생에서 ‘삼베’는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삼을 삼다가 야단맞기도

그가 입고 있는 옷부터 천장에 설치된 대나무 줄기까지 집안 곳곳에는 길쌈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씨는 “삼베 짜는 것을 마을 어르신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며 “처음 배웠을 때는 굉장히 어려웠고 복잡했다”고 말했다. 이어 “삼베를 삼는 것부터 어려워 짜는 것까지는 생각도 못했었다”고 덧붙였다. 어렵다고 느끼는 만큼 삼베 짜는 것에 열중했던 이 씨는 삼베와 얽힌 추억이 많다.

“그동안 길쌈을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삼을 삼는 일이에요. 삼에도 머리와 꼬리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구분할 줄을 몰라 거꾸로 삼기도 했어요. 거꾸로 삼으면 삼이 끊어지기도 하거든요. 그럴때면 어르신들에게 혼쭐이 났죠. 또 길쌈은 혼자 작업을 할 수 없어 마을 어르신들 여럿이 모여 품앗이를 했어요. 품앗이 하는 날은 동네 잔칫날이었죠. 워낙 힘든 작업이라 이웃들과 잔치를 열어 길쌈을 했어요.”

직접 짠 수의

이 씨는 자신의 옷은 물론, 손녀의 옷도 자주 만든다. 연한 하늘색 저고리와 분홍색 치마가 시원해보이면서도 세련됐다. 이 씨는 “여름에는 삼베만큼 시원한 옷이 없다”며 “색도 예쁘게 염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의를 꺼내 들며 “내가 만든 내 수의”라며 “남편 것도 미리 만들어놨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힘들어도 괜찮아!

이 씨가 길쌈을 45년 동안 해오면서 생긴 직업병도 있다. 이 씨는 “옛날 베를 짰던 틀은 힘을 줘서 사용해야 했기에 다리와 허리에 통증이 많았다”며 “3명에서 꼬박 8시간을 손바느질 해야 수의 한 벌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손질을 다 해서 마당에 베를 펼쳐 널어놓는 순간 그동안의 고생은 싹 잊혀진다”고 덧붙였다.

“삼을 심고, 수확하고, 삼고, 메고, 짜는 과정까지 총 18과정이 있어요. 이 어려운 과정을 모두 거친 후 집 앞마당에 베를 펼쳐 널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제게는 그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길쌈 잇는 사람들 없어

한편 요즘엔 길쌈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 과거에는 삼베를 많이 입었지만 요즘에는 삼베를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삼베마을로 지정된 슬항1리에서도 길쌈하는 어르신들은 현저하게 줄었다. 1999년 삼베마을로 지정된 슬항1리는 당시 길쌈하는 가구가 80가구에 달했다. 당시 슬항1리에서 나는 삼베는 거의 다 수의로 판매됐다고. 더 나아가 청삼으로 비누, 샴푸 등 실생활 용품들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18가지의 과정을 거쳐 삼베를 짜야하는데, 육체적으로 힘들고 수익도 적어 길쌈을 하려는 사람이 이제는 없다. 아직까지 길쌈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도 80세가 기본이다.

이에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이 씨는 2010년에 기능보유자를 신청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 씨는 “당진의 삼베를 알리고 우리의 문화, 역사, 전통을 잇고 싶어 기능보유자 신청을 했다”며 “우리 후손들이 삼베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삼베로 만든 옷은 신라시대 때부터 전해져 왔다”며 “이러한 긴 역사가 있는데 우리 세대에서 끊기게 됐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삼베요? 삼베는 내 인생의 전부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배운 일이지만 지금은 사라져가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요. 바람이 있다면 삼베 짜는 일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에요.”
※삼을 삼다 : 삼을 가늘게 째서 만들어 놓은 삼올을 일일이 손으로 연결해서 긴 올로 만드는 일

※이 기사는 당진시대가 시작하는 영상 사업인 <영상으로 만나는 당진의 장인> 편과 함께 취재했습니다. 영상은 이후 당진시대 홈페이지 및 충남방송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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