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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만나다 10 인천광역시 박우섭 남구청장
“꿈을 키운 나의 고향, 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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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식 갖춘 도시 당진으로 발전해야
“남구, 문화중심 도시로 키워나갈 것”

“5살의 나이에 아버지께 학교를 보내달라고 졸랐어요. 제 성화에 못 이긴 아버지는 결국 저를 학교에 보냈지만 선생님은 제 이름을 부르지 않았죠. 아버지의 부탁으로 정식 입학생이 아닌 청강생으로 저를 받아줬던 거예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저는 아버지께 제 이름도 부르게 해달라고 다시 졸랐습니다. 처음으로 선생님께 이름이 호명됐을 때 ‘네!’라고 대답하면서 느꼈던 흥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세상 떠난 아버지 여전히 그리워
인천광역시 남구를 이끌고 있는 박우섭 구 청장은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고향 당진에 대한 그리움이 한 없이 몰려오곤 한다. 당진경찰서 경리계장으로 정년퇴임했던 그의 아버지는 퇴임 이후에도 성모병원 서무과장, 한겨레신문 초대 지국장 등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박 청장이 용산중학교로 진학하기 전 당진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로 가득하다. 성실하게 가정을 책임졌던 모습과 강한 교육열을 토대로 5남매를 전부 길러 낸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아직까지 그를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고향 가는 길, 아이처럼 설레
박 청장은 민선3기와 5·6기를 포함해 10년 이상 남구청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 고향 땅 당진에는 자주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당진시와 남구가 자매결연을 맺은 뒤 연 2~3회 정도는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는 박 청장은 “당진으로 향할 때면 어린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며 “출장 일정으로 당진을 지나가는 경우 고향을 바라보면 흐뭇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당진의 모습을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다”며 “수도권과 인접해 있는 당진시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환경 개선 위해 관·민 함께 나서야
인천광역시 남구는 당진시와 비슷한 현안을 떠안고 있다. 소음과 비산먼지, 환경오염시설에서 내뿜는 유해물질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박 청장은 당진시와 남구를 비롯해 전국적인 현안으로 떠오른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단기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진단했다. 박 청장은 “전국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노력해야겠지만 주민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역민들의 주도적인 역할 수행을 위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진시, 도시개발·녹지조성 함께 이뤄야
한편 박 청장은 도시가 제대로 된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부분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교통수요를 예측할 수 있는 도로시설과 주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녹지 공간 등 장기적인 안목으로 도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도·농 복합도시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차별적인 도시 개발보다 당진의 옛 정취를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또한 시민들의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복지정책 등 무형적인 인프라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 저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면 자랑스럽게 충남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이유는 고향 시민들이 고향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향인 분들 또한 고향 이미지 쇄신에 힘쓰고 있습니다. 저에게 고향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정감 어린 곳입니다.”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민주화운동
생물학자가 꿈이었던 그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선배의 추천으로 연극회에 들어가면서 그의 꿈은 변하기 시작했다. 연극회 활동의 일환으로 1978년 동일방직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겪었던 비참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똥물 사건’을 연극으로 재현하는 등 문화운동에 앞장섰으며, 선배와 친구들과 함께 시위를 주동해 학교에서 재적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던 70년대에는 유신헌법철폐를 주장하며 시위에 나서 수배 생활과 더불어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치욕스러운 고문을 당해야 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역임하기도
한편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을 역임했던 그는 1984년 전두환 방일반대 탑골공원 시위로 구류 10일, 참민족 해방을 위한 거리굿 마당극 공연으로 구류 15일, 택시기사 박종만 열사 빈소에서 생존권 투쟁을 하던 중 또 다시 구류 29일을 겪어야 했다. 민청련의 민주화운동이 각계각층으로 확산되자 군사정권은 다시 전면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이에 민청련은 또다시 고문 철폐를 위한 투쟁 위원회를 결성해 농성을 펼치는 등 탄압에 굴하지 않는 행보를 이어갔다.

박 청장은 “두꺼비는 알을 품는 동시에 뱀을 약 올려 스스로 잡아먹힌다”며 “뱃속에 들어간 두꺼비의 독으로 뱀은 죽고 두꺼비 알은 뱀을 자양분 삼아 껍질을 깨고 나와 자란다”고 말했다. 이어 “민청련의 상징은 두꺼비였다”며 “민청련은 제 몸을 일부러 희생하는 두꺼비처럼 군사정권에 도전해 깨짐으로써 민주화의 씨앗을 싹틔우려는 ‘깨지려고 만든 조직’이었다”고 덧붙였다.

문화와 공동체가 있는 ‘남구’
2002년 구청장으로 당선되면서 박 청장은 더불어 사는 지역 공동체와 문화를 꽃피우는 지역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특히 공동체 회복을 위해 통두레운동을 비롯해 마을 만들기 등 주민간의 사라졌던 정을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남구는 현재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예술영화관을 4곳 운영하고 있는 등 내년에 추진할 I-미디어시티 사업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이외에도 구정 홍보수단으로 쓰이던 구정인터넷방송국을 시민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운영하는 시민참여방송국으로 전환하고 미디어를 체험할 수 있는 상설 전시장 개념의 스튜디오를 만들고 디지털 민주시민대학을 개설, 공동체 민주주의 강좌를 여는 등 남구 발전을 위한 문화산업에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다.

당진시와 자매결연으로 교류 이어
2005년 당진시와 남구는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이후 2010년에는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당진 전국쌀사랑음식축제와 같은 직거래장터를 개최했으며, 2014년에는 남구 주민자치협의회가 당진시를 방문하는 등 활발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이후에도 주요행사 시 상호 방문을 이어가고 있으며, 지난 9월과 지난 25일에는 자매결연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진은 저의 선조들이 일궈놓은 도시이며, 동시에 제가 꿈을 키운 곳입니다. 당진의 옛 정취를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는 한편 장기적인 계획을 토대로 한 지속가능한 개발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또한 시민들이 공공의식과 지역공동체의식을 겸비한 도시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우섭 남구청장은
- 1954년 출생
- 당진초등학교 50회 졸업
- 서울 용산중·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석사과정 수료
- 인하대학교 일반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 전 민주당 부대변인
- 전 민선 3·5·6기 인천 남구청장
- 새정치민주연합 참좋은지방정부 수석 부의장
- 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 상임집행위원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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