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9:24 (금)

본문영역

묵향에 빠진 초락도 섬 소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초락도에서 태어났다. 초락도는 현재 석문면 초락1리로 섬이 아니지만 옛날에는 섬이었다.

당시 초락도에서 당진 시내로 가려면 나룻배를 타고 나가야 했다. 초락도 주민들은 봄엔 보릿쌀 한 말, 가을엔 벼 한 말을 사공에게 줬고, 사공 덕에 우리는 당진 시내로 나갈 수 있었다. 썰물 때는 징검다리를 건너 당진으로 나갔다. 그때는 전화도 없었기에 건너편을 바라보고 소리를 질러 안부를 묻곤 했다. 1960년대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섬이 아닌 육지가 됐다.

섬이었을 때 사진을 찍어놨으면 초락도의 역사를 남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첫 번째 사진은 1970년대 초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다.
석문면 초락도 출신의 나는 순성면 봉소리 출신의 두 살 연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아내를 중매로 만났는데, 당시엔 차가 없어 아내를 만나려고 당진에서 순성면 봉소리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내와의 두 번째 만남은 당진 시내에서 이뤄졌는데, 한 번은 내가 아내에게 멀리 떨어져 걸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곤 아내가 상처를 받았는지 지금도 당시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두 번째 사진은 결혼 후 처갓집 식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19살 때 인천에서 10년 간 생활했다. 당시 나는 채소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 일을 했다. 그때 이장이었던 첫째 형님(홍덕표)이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편지를 보내 농사 지으러 고향에 내려왔다.

세 번째 사진은 2005년에 한일인테리어서전 초대작가상을 수상해 일본 동경극장에서 전시할 때 찍은 사진이다.  
어릴 적 고모부가 글방을 운영하셨는데, 글방 선생님이 우리 집에 살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한문을 배웠고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천자문을 뗐다. 지금도 당시 배웠던 천자문 책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첫째 형님이 직접 천자문을 써준 책으로, 나 뿐만 아니라 내 동생도 이 책으로 천자문을 배웠다.

네 번째 사진은 전명옥 전 한국서예협회 이사장과 김용남 다원갤러리 대표(상록서실 원장)과 함께 독일 베를린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때 독일연방신문국 초대 전시를 진행했다.
나와 김용남 대표는 인연이 깊다. 2000년 다시 서예를 하려고 상록서실을 찾았고, 그때 만남이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도 하루에 한 번은 만나는 것 같다. 함께 부부동반 여행도 가고, 전시도 함께 감상하러 간다. 실과 바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섯 번째 사진은 김용남 대표와 시극을 할 때 찍은 사진이다.
시극을 하게 된 계기도 김 대표 때문이다. 김 대표가 나를 데리고 한국시낭송가협회 당진지회를 찾았다. 나는 이날 안섬포구에 대한 시를, 김 대표는 석문방조제에 대한 시를 낭송했다.
 

>>홍락표 회장은
·1950년 초락도 출생
·전 당진서부새마을금고 부이사장
·전 석문면 초락1리 이장(6년)
·전 석문면주민자치위원장(3년)
·현 상록묵향회 회장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