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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과장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관료제의 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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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는 슬프고 우울한 영화였다.

영화 중반부터 관객들의 훌쩍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 함께 영화를 봤던 일행들도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주인공인 다니엘 블레이크의 말로가 너무 안타까웠을 뿐만 아니라 싱글맘 케이티와 자녀 등 세 사람의 피폐한 생활 역시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참 불편한 영화였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뭔가 희망을 발견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어둡고 침울한 기운만 감돌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라기보다 실업자와 한 부모 가족의 문제를 다룬 영국식 다큐멘터리(documentary)나 르포(reportage) 같았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료제의 병리를 고발한 영화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는 질병수당을 받아야만 생활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를 신청하려고 전화를 하니 통화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 때문에 직접 관공서를 방문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을 내 방문한 관공서에서는 안내직원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신청을 하라며 컴퓨터 앞으로 데려간다. 구세대인 주인공에게 인터넷은 너무 낯선 것이었다. 어렵사리 주변의 도움을 받아 신청했더니 이제는 구직행위를 했다는 서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력서를 제출하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그것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직행위를 하다보니 증거가 없어 감독관이 인정해주지 않았다. 어렵사리 케이티의 도움으로 항소심을 하러간 법원 화장실에서 블레이크는 고단한 삶에 지쳐 쓰러지고 만다. 가난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고 했던 블레이크는 막스 베버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조직이라고 믿었던 관료제조직의 병리로 말미암아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만다.

 이 영화에서 드러난 관료제의 병리는 번문욕례(Red Tape) 또는 서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명확한 규칙과 공정한 절차에 따라 사무를 처리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이 오히려 형식적인 면에 예속됨으로써 비합리적 경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즉 규칙이 너무 세세하고 번잡하면 비능률적인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질병수당이라는 사회보장제도가 있어도 까다로운 신청절차로 혜택을 받지 못했던 블레이크나,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국가수당의 제재대상이 되는 케이티는 형식주의의 희생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또 다른 병리는 할거주의(sectionalism) 또는 부서이기주의였다. 이는 자기 소속기관, 국, 과만을 생각하고 타 기관이나 국, 과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으려는 현상이다. 즉, 종적으로는 협력할 수 있는데 횡적으로는 협력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 영화에서 블레이크의 처지를 안쓰럽게 보고 한 여직원이 도와주자 그녀의 상사가 나타나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며 경고를 했다. 일처리와 관련하여 정실이나 자의를 배제하고 보편타당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권장해야 하지만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동정심이나 애정이 없다면 인간사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관료제의 병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인간주의를 회복하여야 한다. 어떠한 조직도 시간이 지나면 본래 목적과 다르게 운영된다.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사적 편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만든 제도가 때론 그들을 괴롭힌다. 관료주의가 출현하는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슬로건을 내건 영국에서 만든 이 영화의 내용이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블레이크가 보여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소통 그리고 연대는 인간주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우리가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인간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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