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읍내동 육광균 씨
“당진의 역사 소개해주세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미면 덕마리에서 태어난 육광균 씨는 17년 전 읍내동으로 이사왔다. 올해로 84세를 맞은 그는 덕마리에 살면서 신성대학교가 건립될 당시 1만 평의 토지를 기부했다. 또한 인근 토지보상 문제와 도로포장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역할을 했다.

“신성대 설립자인 이병하 이사장이 당진상고 후배였죠. 후배가 고향에 대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말을 듣고 돕고 싶었어요.”

그는 64세의 나이에 아내를 떠나 보냈다. 당뇨를 앓던 아내를 3년간 간호한 그에게 아내와의 이별은 큰 슬픔이었다. 하지만 외롭던 그에게 새로운 연인이 찾아와 제2의 인생을 살고있다. 육 씨는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은 사별한 아내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내 선택을 지지해준 아들에게 매우 고맙다”고 말했다. 4년 전부터는 당진시노인복지관에서 아내와 탁구를 치는 것이 거의 일상이란다.

한편 육 씨가 당진시대를 구독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고향 소식을 알기 위해 직접 구독을 신청했다는 육 씨는 “당진시대만한 지역신문이 없다”며 “한국체대 교수로 재직 중인 아들(육현철 교수)도 구독하고 있는데 다양한 지면과 출향인 소식까지 읽을거리가 가득하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특히 당진향교나 남이흥 장군의 묘역과 유품 등 당진 역사에 대한 기사를 좋아한다는 그는 “당진에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려야 한다”며 “당진시민들에게 우리 고장의 역사를 알리고 나아가 당진을 대표하는 문화재를 만들어 당진을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발전소로 인한 공해와 미세먼지로 시민들이 고통받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육 씨는 “밖에 나가는 일이 없어 체감하지는 못하지만 지인들은 항상 당진의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 뿐”이라며 “하루빨리 발전소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인터넷 신문으로도 자주 당진시대를 접한다는 육 씨는 “지면기사의 경우 글씨가 작아 읽기 어렵다”며 “특히 사진으로 보는 주간소식은 사람 찾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사진이 작아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사진을 적게 내더라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도록 크게 게재하면 사람들이 더욱 관심 가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당진시대를 독자의 입장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당진시대의 정신을 끝까지 지키길 바라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