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9:24 (금)

본문영역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의 지역역사산책11
기댈 곳은 동학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직을 사고판다는 것은 국가 기능이 상실됐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관직을 사고 파는 일에 앞장선 것이 다름 아닌 왕과 왕비였다면 더욱이 말 할 나위가 없다.

조선조정이 얼마나 무능하고 부패했었는지 매천 황현은 『동학란』을 통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중궁의 기도하는 것이 절제가 없고, 여기에 쓰는 것이 한도가 없어 비용이 하도 많이 들므로, 드디어 수령을 싼 값으로 마구 팔고, 부유한 군과 가난한 읍의 녹봉을 보아서 값을 받아들이니”라고 기록돼 있다.

또 왕비이던 민비의 사치스러움과 도를 넘는 미신숭배를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민비는 나라가 파탄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임오군란 때 충주로 피난가면서 만난 무당에게 진령군이란 군호를 주어 궁중에 머물게 하면서 굿판을 벌였다. 굿판을 벌인 이유도 나라를 위함이란 안중에도 없고, 오르지 몸이 병약했던 왕자의 무병장수와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서였다. 진령군 주위에는 항상 돈으로 벼슬을 사려는 자들과 청탁을 위해 몰려든 벼슬아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는데, 조선조정은 진령군이라는 무당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사정이 이와 같기에 아무리 관직에 가격을 매겨 팔아도 조선의 국고가 채워질리 만무했다. 문제는 더 이상 팔려해도 팔 관직이 없었다는 것이고,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고안해 낸 것이 관직의 임기를 줄여 여러 번 관직을 팔 기회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관리의 잦은 교체는 관직을 돈을 주고 산 관리가 짧은 임기 내 본전을 되찾고, 다른 관직을 살 뒷돈을 마련하기 위해 민중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도록 만들었다. 구조적으로 일상화된 부정부패가 만연한 조선사회에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민중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이제 조선민중이 기댈 곳은 오직 동학뿐이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