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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교육에 지극한 열성보인 여든살 할머니 - 합덕읍 대합덕리 박검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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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합덕읍 대합덕리 박 검 의 할머니



자식교육에 지극한 열성보인 여든살 할머니
‘지식은 도둑맞지 않는 재산’

“큰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상태였지만 줄줄이 3남3녀를 교육시켜야 하는 책임이 나에게 주어져있던 그 당시에는 나혼자 얘들을 어떻게 키우나 하는 생각이었지.”
마흔여덟의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그 착잡했던 심정을 회고하는 박검의 할머니(82세).
지금은 편안히 앉아서 그때를 되돌아보지만 당시에는 정말 ‘억척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해보지 않은 장사가 없었지. 도둑질만 아니면 뭐든 닥치는대로 해야 했으니까...”
합덕방죽에서 식당을 하고, 농사도 짓고, 장에 나가 찬거리도 팔았던 시절에 박검의 할머니가 생각한 것은 오직 ‘자식교육’이었다. 남편없는 생활에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6남매의 학자금은 꼬박꼬박 미리 챙겨뒀다. 아이들이 돈걱정없이 공부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박할머니는 반에서 학자금을 제일 먼저 낼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 준 것이다.
“돈은 벌어 도둑맞을 수도 있지만 지식은 누구한테도 도둑맞지 않고 쓸 수 있잖어. 그래서 난 무조건 배우는 데까지는 배워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지.”
남자건 여자건 배워야 한다고 믿었던 박할머니는 그런 교육열의로 인해 큰아들인 이형환(58세)씨를 합덕에서는 처음으로 박사로 만들었다. 또한 다른 다섯자녀들도 고등교육까지 모두 시켰다.
‘미국아이다호 대학에서 미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건국대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큰아들을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모두 씻겨지는 것 같다’고 말하는 박검의 할머니.
환갑이 넘은 64세때 탈곡기에 왼팔마저 잘려나간 박검의 할머니는 조그마한 체구에 구부러진 허리 때문에 더욱 외소해 보이지만 자식들 교육에 대한 열정만큼은 지금도 강렬하다.
박할머니는 ‘난 돈벌어서 저 시멘트건물(학교)에 다 바쳤어’라고 말하지만 그 말속에는 ‘그 어떤 것보다도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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