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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0 09:49
  • 호수 1174

“여성들이 이기적이어야 해요”
여성이 뛴다 16 김용남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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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글씨 잘 쓰는 아이’
“다원갤러리, 작가-시민 소통하는 공간으로”

 

“예술계는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지만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은 드물어요. 남성은 가정에서 내조를 받기 때문에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많고 그로 인해 높은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많죠. 반면 여성들은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시간도 부족하고 지쳐서 예술 활동을 하기가 힘들죠. 여성들이 어느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어느 정도 이기적이어야 해요.”

김 서예가는 1961년, 작은 시골마을인 대호지면 두산리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잇따른 딸 출산에 아들을 원했던 할아버지는 그의 이름에 사내를 의미하는 ‘男(남)’자를 넣어 작명했고 바라던대로 바로 아래 남동생이 태어났다.

시대가 그랬듯 그 역시 줄곧 성별로 인해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았다. 사랑방은 장손인 동생만 출입할 수 있었고 천자문 역시 장손만 배웠다. 김 서예가는 사랑방 문 너머 새어나오는 소리로 천자문을 공부하곤 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장손만 옆에 두고 살았다”며 “기죽기 싫은 마음에 뭐든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서예에 남다른 실력을 보여 온 그는 천의초와 미호중을 다니는 내내 글씨 잘 쓰는 학생으로 꼽히곤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집안이 어려워 언니와 나는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와 언니의 희생으로 아래 5명의 동생들이 모두 대학까지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편 1989년 1월 1일, 김 서예가는 29살의 나이에 결혼했다. 사업하는 남편을 만나 좋은 날도 있었지만 힘든 날도 있었다. 그는 당시의 어려움을 서예로 위로받았다.

이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동방서법탐원회를 다녔다. 이후로도 서울과 당진의 서예 대가들을 만나며 공부했고 동방대학원에서 강사 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함께 취득해 놓았던 1급 한자자격증으로 한자교습소를 열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1998년 상록서예학원을 문 열었으며 실력을 쌓은 원생들로 구성된 동아리 상록묵향회 지도작가 활동을 비롯해 지금은 당진문화예술학교와 삼봉초, 고대면주민자치센터, 당진시노인복지관 등에서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한편 지난해 8월에는 다원갤러리를 오픈했다. 그는 “당진에는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갤러리가 부족하다”며 “작가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갤러리를 오픈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다원갤러리를 문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오픈 이후 교류전과 기획전, 개인전 등 15차례의 다양한 전시가 다원갤러리에서 열렸다.

“다원은 제 호지만 그 전에 ‘모든 예술’을 뜻해요. 이 공간을 통해 지역시민에게 모든 예술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실력있는 전업작가들을 키우기 위해 작품 판매를 위한 활동에도 노력할 예정입니다. 다원갤러리가 작가와 시민이 만나 공감하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김용남 작가는?
- 1961년 대호지면 두산리 출생
- 천의초·미호중·태안여상
  졸업
- 현 다원갤러리 관장
- 현 한국미술협회 이사 및
  초대 작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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