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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지역의 문화재를 엿보다 21 안국사지
고려 문화 엿볼 수 있는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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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석탑 등 역사 흔적 많아
매향암각 통해 어지럽던 세태 알 수 있어

안국사지는 정미면 수당리 안국산에 위치해있다. 안국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출토된 기와 조각 중 하나에 ‘태평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태평은 중국 요나라의 연호로, 태평 10년은 고려 현종 21년(1030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절이 많이 건립됐다고 추정된다. 이를 통해 안국사 건립시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안국사는 조선 후기에 폐사됐으며, 이후 승려 임용준이 절을 다시 일으켰지만 다시 폐사됐다고 한다. 현재 안국사지 옛 터에는 보물 100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삼존입상과 보물 101호로 지정된 석탑, 충청남도 기념물 163호 매향암각이 있다.

충청권 유행했던 불상 형식
석조여래삼존입상은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의 보살로 이뤄져있다. 본존불은 머리에 갓을 쓰고 있으며, 눈과 눈썹은 길게 그어져 있다. 코와 입은 작고 괴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좌우 보살상은 머리에 전체적인 형식은 본존불과 유사하다. 오른쪽 보살상은 본존불보다 입체감 있는 모습이며,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왼쪽의 보살상은 머리 부분이 없어졌고 훼손이 심해 세부적인 표현을 확인하기 힘들다.
석조여래삼존입상은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괴체화(거대하고 뭉뚱그려진 불상 양식)의 형식을 잘 반영하고 있고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과 함께 주목되고 있다.

고려시대 석탑 특징 반영
한편 석탑의 경우 보물 101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석탑으로, 높이 3m의 이 석탑은 원래 5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2층 이상의 몸돌이 없어져 1층의 몸돌과 지붕돌 위에 2~4층의 지붕돌이 포개져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감이 없고 조각은 형식적이다. 1층 몸돌이 작고 마치 받침돌과 지붕돌 사이에 끼워져 있는 모습 등을 보아 고려 중기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극락왕생 빌었던 매향암각
한편 석조여래삼존입상 뒤에는 매향암각이 있다. 매향암각 왼쪽에는 ‘경오년 2월에 선각이라는 화주가 중심이 돼 향도를 결성하고 여미현의 북쪽에 있는 천구포 동쪽에 매향을 했다’고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는 ‘경술년 10월 염솔 서쪽의 출포마을의 OO등이 향나무를 묻었다’라고 쓰여 있다. 옛날에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갯벌에 향나무를 묻고 제를 올리면서 미륵불의 미륵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랐다. 향나무를 매개로 미륵불을 만나 극락에 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매향을 오랫동안 묻어두면 좋은 품질의 향이 될 것이라고 믿었고 향을 피우면 극락에 들 수 있고 약으로 쓰면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적혀있다. 이를 통해 왕권 교체 등 어지러웠던 당시의 세태를 알 수 있다.

※이 기사는 충남도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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