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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의 지역역사 산책]
일본 야욕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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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성에서 철수한 동학농민군은 전라도 각 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에 주력했다. 이때 설치된 집강소는 나주, 운봉 등을 제외한 전라도지방 53개 주읍에 설치됐고, 전주에는 대도소가 설치됐다.

전라감사 김학진으로서는 동학농민혁명으로 각 고을의 치안과 행정력이 마비된 상태에서 동학조직을 이용해 조선조정의 통제력을 복원할 필요가 있었고, 동학농민군으로서는 집강소를 설치해 민중 스스로 자치 정부를 설치해 운영함으로써 폐정개혁을 확실하게 집행할 수 있게 됐다. 집강소가 전라도지방에서만 운영됐던 것은 아니고 충청도에서도 집강소가 설치·운영됐다. 동학농민군의 집강소 설치와 폐정개혁 요구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 집권한 친일정권에 의해 국정개혁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갑오경장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개혁은 문벌과 반상제도의 혁파, 문무존비(文武尊卑)의 차별 폐지, 공사노비법(公私奴婢法)의 혁파, 천민의 면천, 죄인연좌법(罪人緣坐法)의 폐지, 양자제도의 개선, 조혼 금지 및 과부재가 허용 등의 내용으로 구체화됐다.

동학농민군이 주장한 개혁적 요구를 갑오경장이라는 이름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조선사회에서 수 천 년 동안 민중을 옥죄었던 신분제가 형식적으로는 철폐되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 동학농민군의 동도대장 전봉준은 전라감사 김학진을 설득해 서로 협조하면서 외세 침략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전봉준과 김학진의 노력은 냉혹한 국제정세 속에 허무하게 무너져 갔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오랜 준비를 마친 일본군은 청군의 개입이 기정사실화 되자 텐진조약을 명분으로 인천항에 상륙하여 아산만으로 상륙한 청군과 대치하게 됐다. 일본군은 청국과의 전쟁을 통해서라도 조선을 점령하려 들었다. 이제 조선을 강탈하기 위한 일본의 야욕이 노골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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