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의 지역역사산책 20
청일전쟁

당진시대l승인2017.09.30 16:12l(1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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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보내게 된 배경은 민비의 권력욕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비는 동학농민군이 대원군과 접촉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동학농민군을 그대로 두면 반드시 대원군에게 권력을 빼앗길 것이라 걱정하였다. 민비는 고종을 제치고 척족인 민영준을 시켜 청나라 원세계에게 청군 파병을 부탁하였다.

청군은 동학농민군을 진압해 달라는 조선의 요청으로 조선에 개입하게 되었다. 일본군은 일찍부터 청군이 조선에 파병할 것을 예상하여 참모본부 내에 대본영을 설치하고 6000명의 대부대를 편성, 조선에 출병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계략이 있었기에 일본군은 일본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6월 9일 제물포에 상륙했던 것이고, 경복궁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6월 21일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은 조선 수비군을 무장 해제시키고 고종을 위협하여 대원군을 복귀시킨 후 친일정권을 수립하였다.

청일전쟁은 당진 앞바다 풍도에서 시작되었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아산만으로 들어온 청군은 송악 안섬포구를 거쳐 아산 백석포에 상륙하였다. 백석포에서 성환으로 이동하여 주둔하고 있던 청군은 증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1200명의 증원군은 일본군의 기습공격으로 타고 있던 고승호가 격침되면서 풍도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지 이틀 후인 6월 23일의 일이다.

당진 앞바다 풍도에서 벌어진 해전을 통해 기선을 제압한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대기하고 있던 혼성9여단을 평택으로 급파하였다. 일본군의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청군은 대열이 무너지면서 대장 섭지초가 앞장서고 군사들이 뒤따라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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