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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사진
  • 입력 2017.10.21 16:16
  • 수정 2017.10.21 16:19
  • 호수 1179

[추억사진]강근식, 김계익 부부
“학생들 가르칠 때가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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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면 천의리 출신의 나는 서산시 운산면 출신의 아내(김계익)를 만나 29세에 결혼했다. 결혼한 지 어느덧 56년이 됐다.

나는 당진군청에서 퇴직한 뒤 고대면 진관리에서 사과농사를 지었다. 농사짓느라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공직생활을 하고 있을 때 사과농사 운영을 시작했고 24년 간 이어졌다. 퇴직하고 열심히 농사에 매진하겠다고 했으나 허리디스크로 3년 간 일을 쉬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농장을 가꾸지 못했고 결국 사과나무가 죽어 농사를 포기해야만 했다. 현재 나와 아내는 집 인근에서 땅콩, 강낭콩, 배추, 무 등 다양한 밭작물 농사를 짓고 있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니, 20대 시절이 좋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릴 적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이기에 먹고 살기 힘들었다. 나의 바람은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롯데마트 당진점 주차장을 돌고 헬스를 다니면서 근력운동을 하는 등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첫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가 총각, 처녀 때 찍은 사진이다.
아내 말로는 결혼하기 전에 찍은 증명사진이라고 말한다. 아내는 10대 후반에 찍은 사진이다. 이때 아내는 얼굴 살이 통통하니 예뻤다.

 

두 번째 사진은 석문중학교 학생들과 부여로 소풍가서 찍은 사진이다.
21세 때 2년 5개월 간 석문중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재직했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잘 가르친다는 이야기도 듣곤했다. 그러나 군 제대를 하고서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면 교사가 될 수 없다고 법이 바뀌면서 교사로 재직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면천에 위치한 영탑사에서 생활하면서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고시 준비 중에 2년제 이상의 대학을 수료한 자에게만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을 알고 결국 포기했다. 이후 1964년 31살의 나이에 당진군청에 입사했다.

 

세 번째 사진은 아내와 수덕사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중매로 만났으나 같은 교회에 다녔다. 면천감리교회에 다녔던 나는 교회 권사이던 장모에게 잘 보여, 아내를 소개받았다. 당시 아내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회사가 부도나 외가가 있는 당진을 찾았었다. 아내는 당시 잘생겼고 목소리가 좋았다며 나와 결혼했다.

 

네 번째 사진은 아내가 큰 딸인 은경이를 임신했을 때,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첫째 은경이와 막내 희나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장남인 희일이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일경이는 지역 문화예술행사에 사회를 보는 등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특히 희일이는 내가 꿈꿨던 법조인의 꿈을 대신 이루고자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마지막 사진은 막내 딸 희나를 업고 찍은 사진이다.
희나는 막내이지만 언니, 누나같았다. 속이 깊었다. 부모로서 4남매가 잘 자라줘서 고맙다. 우리 자녀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는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


>>강근식 씨는
·1933년 정미면 천의리 출생
·면천면 성상리에서도 거주
·현재 원당동 거주
·천의초·면천중·당진농고 졸업
·석문중에서 수학교사로 재직
·당진군청에서 30년 간 근무
·현 당진감리교회 장로

>>김계익 씨는
·1936년 서산면 운산리 출생
·순성면 성북리와 면천면 성상리에서도 거주
·현 당진감리교회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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