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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8.02.23 21:39
  • 호수 1196

[칼럼] 이동준 당진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스물 둘, 그 불타는 청춘의 영혼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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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앞에선 절대 선(善)도 절대 악(惡)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1987>을 보면 남영동에서 고문을 견뎌내던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이 가족사진을 들이대자 무너져내리는 장면, 대공수사처 조반장(박희순 분)이 강렬히 저항하다가 ‘가족을 돌보고 책임지겠다’는 박처장(김윤석 분)의 말에 “받들겠습니다”라며 무릎을 꿇는 장면에서 가슴이 아려온다.

작가 김훈은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지만,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글을 남겼는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돈과 밥으로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누릴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만으로 삶을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도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지는 세상,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야 비로소 돈과 밥을 정당하게 누리는 것이리라.

인권의 문제는 돈이나 밥과는 다른 선상에 있는, 계급간의 집요한 싸움이다. 이미 근대에 천명한 천부인권 사상은 자유, 평등, 평화 등 보편적 가치가 지향하는 인류 최고의 가치이고,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개인이나 집단이 종종 이 가치를 흔들어대는 짓을 자행한다. 그들은 스스로 ‘갑’의 계급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인권교육 차원에서 영화 <1987> 관람을 제안한 이유로 당진시장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리고, 자유한국당 소속 충청남도의회 의원들이 충남인권조례를 폐지하는 안을 기습적으로 가결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세월호 당시의 무능했던 정부 수장들은 하나 둘씩 죄 값이 드러나고는 있지만, 세월호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이한열이 국가권력의 직격탄을 머리에 맞아 숨을 거둔 것이 향년 스물 두 살이었고, ‘이러다 죽는 거 아냐?’,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차디찬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간 세월호 아이들의 나이도 올해 스물 둘이다. 살아있어도 사는 곳을 ‘헬조선’이라 여기며 스물 둘의 나이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 ‘갑’들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크고 작은 인권 이슈는 점점 더 많이 수면으로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연대의 움직임이 계속 커져갈 것이다. 거리에 나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스물 두 살들이 건강한 중년으로 성장해 있고, 오늘의 스물 두 살들은 횡포 부리는 ‘갑’이 국가수장일지라도 ‘을’의 행동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더 커지면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경험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을’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정부가 구성되었고, 올해는 ‘갑’다운 ‘갑’을 골라내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쓰러진 이한열을 부등켜 안아도, 무너진 세월호 아이들을 보듬어 안아도 가슴이 시리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린 가슴을 부여잡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유권자들은 충남인권조례 폐지에 동의한 의원들에게 다시 ‘갑’의 옷을 입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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