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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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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중 회 / 은수교회 담임목사
우리당진이 시작하자

어떤 부자집 문간밖에 병든 거지가 살고 있었다. 부자는 매일 기름진 음식과 좋은 옷으로 호의호식에 거드름을 뚝뚝 떨구며 살았고, 문간 거지는 버려지는 음식찌꺼기를 주어 먹으며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얼마후 두사람 모두는 죽는다. 그런데 죽은후의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어 거지는 천국에 갔고 부자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부자의 지옥행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무관심 때문이었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기사이다. 자기집 문간에서 굶주리며 서서히 죽어가는 거지를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은 부자의 무관심은 그의 생을 지옥으로 끌어가는 수레의 바퀴가 되고 만 것이다.
20세기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당시 배부른 유럽의 문간에 쓰러져 굶주리는 아프리카를 구출하기 위해 평생을 아프리카의 오지 람바레네에서 선교사로, 의사로, 자애로운 구조자로서의 위대한 생애를 마쳤다.
오늘날 배부른 남한의 문간에서 북한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식량을 보내주겠다고 나서는데 정작 같은 민족내부에선 갈팡질팡이다.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슬프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뇌고착된 서로의 적개심과 대결의식, 이념과 사상에 색칠을 해서 반동으로, 용공으로 편가르기와 몰아부치기로 얼마나 많은 형제들을 매도 처형했는가.
차디차게 식어 얼어붙은 민족애를 녹이고 불을 지펴야할 때가 왔다. 다른 생각ㆍ사상ㆍ이념을 전제로 굶는 한쪽을 죽게 내버려두는 비정을 이젠 중단하자.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그의 사상과 이념을 묻고 난 후 건져주려한다면 그건 시체 건지는 일로 끝나버리고 말것이다. 물에 빠진 이가 같은 핏줄 동포이기에 이런 일은 더욱 가혹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느날 밤 TV 9시뉴스를 틀어보니 식량을 가득실은 트럭떼가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북으로 줄지어 달리는 모습이 방영된다. 조금 있으니까 북의 주민들이 달려나와 박수를 치며 트럭을 맞이하고 저들 대표의 안내를 따라 필요한 만큼의 식량을 받아가고 이렇게 북한전역의 기아생태가 해소된다.
드디어 통일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50년동안 헤어져 살던 이산가족들이 속속 만나 서로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남북대표들의 통일논의는 무척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갔다. 이 모든 상황의 진전은 남쪽의 무조건적인 식량지원의 여파였다.
이런 뉴스방송은 우리시대에 정말 불가능하기만 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가능한 일들이다. 우리당진에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팔짱에 비껴 넣었던 팔,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을 빼어 우리민족 서로돕기 당진운동본부에 성금을 넣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골은 우리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예찬하였다. 꺼진 심지로 가슴앓던 민족가슴에 불을 지피자. 가능성에 머물러 서버린 민족애의 기관차에 시동을 걸자. 우리당진이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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