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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8.05.11 22:49
  • 호수 1207

[종교칼럼] 점안법회를 통한 부처의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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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산 행복도량 상원사 주지

안의식은 불상을 조각하거나 불화를 그린 다음 진언을 외우며 의식을 갖추어 불상과 불화의 눈에 붓으로 눈동자를 찍는 의식으로 개안식(開眼式)이라고도 합니다. 새로 조성한 불상 등에 경전과 다라니 등을 복장(腹藏:배)에 넣고 점안식을 하는데 여법한 의식을 통해 종교적 생명 즉 불보살의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불상에 넣어 드리는 것입니다.

또 부처님이 가지신 32상(相)과 80종호(種好)의 장엄이 눈동자를 찍기 전에 불상의 눈이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慧眼)·법안(法眼)·불안(佛眼)·십안(十眼)·천안(千眼)·무진안(無盡眼)을 성취하기를 기원하고 개안광명진언·안불안진언·관욕진언·시수진언·안상진언 등을 외워 위신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점안식에는 불상·불화점안식 외에 나한점안·사천왕점안·시왕점안, 가사점안 등이 있습니다.

새로 부처님 상(佛像)을 조성하거나, 부처님 모습을 그리거나, 불화(佛畵) 또는 개금 불사 즉, 다시 부처님 옷을 입혀드리고 나면 큰스님을 모시고 여법하게 점안식을 거행하는데 식을 하기 전에는 흰 창호지로 만든 고깔을 씌워 놓고 절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점안이 되지 않은 불상이나 불화에 예배드리게 되면 사불(邪佛)이 되어 장애가 생긴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법당에 모시게 되는 불상이야말로 모든 불자들의 정성어린 시주로부터 불모(佛母, 불상조각가)의 깊은 신심과 정성으로 조성하여 법력이 높으신 큰스님께서 법답게 의식을 갖추어 점안을 하심으로써 비로소 그 불상은 부처님으로서의 지혜와 자비로운 32상 80종호의 위신력이 갖춰지며 불가사의한 불력(佛力)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중생을 자비로 포용하는 부처님의 점안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래 부처님(法身)은 온 우주에 충만하시어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고 이 세상에 가고 옴의 거침이 없이 항상 계시지만 우리 중생들이 눈이 어두워 이를 보지 못하므로 그 보이지 않는 부처님을 보여주고, 들리지 않는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며, 진리를 깨우쳐 주고자 32상 80종호의 그 위대한 상호의 모습을 조성하여 점안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점안식을 모신 부처님께는 일체의 삿된 마구니가 범접하지 못하고 크나크신 위신력이 충만하게 되니 우리가 불상을 향하여 예배드림은 그 불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이 우리 중생들을 깨우쳐 행복한 삶을 가르쳐 주신 크신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존엄하신 부처님의 존상에 점안해드리고 밝고 빛나는 지혜의 눈을 성취하여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오염된 우리의 자성(自性)을 맑고 깨끗하게 하며 보리심을 발하여 열반상락(涅槃常樂)을 증득하고자 함이니 불도량을 장엄하고 법당을 단청함은 곧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장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점안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상원사에서는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아미타여래본존불을 범전혜공 큰 스님을 모시고 점안식을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아미타 여래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자 현세 소망 성취불입니다. 죽음의 고통으로 부터 중생을 구제하러 오는 분으로, 산스크리트어로 ‘아미타바 붓다’ 혹은 ‘아미타유스 붓다’로도 불립니다. 아미타바는 한량없는 빛을, 아미타유스는 한량없는 수명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전자를 무량광불(無量光佛), 후자를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 칭합니다. 부처님의 가장 큰 바람은 모든 중생을 자비로써 구제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각박하다고들 합니다. 이런 각박한 세상에 부처님의 자비로운 법비로 모든 분들이 행복해지시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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