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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 입력 2018.05.25 20:21
  • 호수 1209

[종교칼럼] 기대(期待)에 대한 부담감
편종만 팔복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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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사도는 자신을 지명하여 부르신 분이 누구이시고 자신에게 위임된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바울사도는 자신을 불러 일꾼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주님의 그 기대에 대한 부담감이 사울을 바울 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좋은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어린이날이 있고, 좋은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어버이날이 있으며, 좋은 스승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스승의 날이 있다. 그리고 좋은 배우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부부의 날이 있다.(5월21일)

자녀가 이 땅에 태어나면 부모가 제일먼저 해야 할 일 중에 대표적인 일은 자녀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정훈과, 세훈, 두 아들이 있다. 큰아들 정훈(正勳)은 그 당시 아역배우 중에 정훈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그렇게 좋아보여서 그 아이와 같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지었고, 둘째 세훈(世勳)은 인간 세, 공훈 훈, 세상에 공을 세우는 아들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지었다.

모든 부모는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기대를 가지고 작명소를 찾아 이름을 짓기도 하고 집안 어른 중에 식견이 있는 분에게 부탁드려 이름을 짓는다. 교회를 개척할 때 교회명도 그러하고, 사업을 시작할 때 상호도 기대를 가지고 짓는다.

모든 사람은 서로에 대한 기대가 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고 자식은 부모님에 대한 기대가 있으며, 스승은 제자에 대한 기대가 있고 제자는 스승에 대한 기대가 있으며, 남편은 아내에 대한 기대가 있고 남편도  아내에 대한 기대가 있으며, 감독은 선수에 대한 기대가 있고 선수는 감독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리고 국민은 국가에 대한 기대가 있고 국가는 국민에 대한 기대가 있다. 교회 안에는 장로, 권사, 집사, 직분자가 있다. 직분자 중에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하는 직분 자가 있는가하면 기대한 것만큼 하는 직분자가 있고 기대에 못 미치는 직분자도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내 자녀에게, 부모님에게, 배우자에게, 내가 소속해 있는 기관에서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잘하는 사람일까? 기대한 것만큼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그런 사람일까?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대를 담아 지어주신 이름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고 모든 산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셨다. 사람들은 부담감을 가지고 살기를 거부한다.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주인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야한다. 가정의 달 5월 기대에 대한 부담감을 한 번쯤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바울사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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