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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당진 사랑에 빠진 미국 휴스턴의 최영기 씨(Charle Choi)
‘반촌 사람’이 되고 싶은 찰리 아저씨

“내가 반한 당진…3년 안에 돌아올 것”
미국 텍사스 휴스턴과 당진, 많이 닮아
한수미l승인2018.06.15 22:13l(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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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반촌 사람이에요”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송악읍 반촌리 친구 집에 잠시 살고 있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도 있다. 말 그대로 반만 촌사람인 반촌(半村)이라는 뜻이란다.

도시는 많은 것이 갖춰져 있지만 조금은 번잡하고 시끄럽다. 반면 시골은 부족한 것이 많지만 조용하고 위안을 준다. 딱 그 중간이 ‘당진’이라고 최영기 씨는 말한다.

이민을 떠나 현재 살고 있는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도 마찬가지다. 반촌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닮은 것이 많은 미국 텍사스의 휴스턴과 한국의 당진. 멈춰져 있던 그의 삶의 시계가, 새로운 터전인 당진에서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

 

‘노 웨이(No way)’

섬유와 건설 사업으로 대구가 호황을 누리던 때, 대구 출신인 그는 한 언론사의 중책까지 맡으며 치열하지만 안정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IMF가 덮쳤고 회사에서는 직원 60%를 해고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은 물론 결혼을 앞둔 후배들이 구조조정의 대상자였다. 그는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후배들을 보며 대신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노웨이(No Way)’였다. 그는 “퇴사하고 보니 노웨이였다”며 “되돌아갈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서른 후반의 아내와 어린 딸 하나를 둔 가장이었죠. 퇴사를 하긴 했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취업하기는 어려운데 책임질 가정이 있으니 앞만 보고 걸었어요. 뒤에 길이 없다면 앞으로 갈 수밖에 없잖아요?”


험난한 파도 속으로

그가 선택한 것은 이민이었다. 도망은 아니었다. 그는 “기회의 땅인 미국에 가고 싶었다”며 “또한 IMF가 험난한 파도라면 그 진원지로 가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 씨가 선택한 곳은 미국 텍사스 주의 휴스턴이었다.

그는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생명으로 보았다. 생명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 그는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시골살이를 늘 염원했고, 그래서 유명 도시가 아닌 텍사스로 향했다. 미국은 인종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평화의 나라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그곳에서의 삶은 혹독하고 냉랭하기만 했다.

 

동향인에게 받은 냉대

“먼저 터를 잡은 이민자들이 저를 더 힘들게 했죠. 저는 동향이기에 한국사람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나봐요.”

그를 힘들게 한 것은 같은 한국인이었다. 자동차를 저렴하게 판다고 해서 없는 돈을 다 털어 지불했더니 알고 보니 할부 차량이거나, 최 씨 가족 이민을 위해 서류 작업을 맡아 줄 능력 있는 변호사를 높은 수임으로 소개 받았는데 알고 보니 능력이 없는 변호사이기도 했다고. 이로 인해 최 씨는 재판을 받으며 며칠 간 수감되기도 했단다. 그는 “그때의 기억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라며 rh개를 가로 저었다.

 

8가지 직업 거쳐

그는 미국에서 8가지의 직업을 가졌다. 주유소와 도너츠 가게, 자동차 정비소, 세탁소에서 점원으로 근무하고 거리에서 신문을 판매하기도 했다. 또 넥타이 등을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로드세일러로 일하며 경찰이 보이면 냅다 튀어야 하는 직업도 가졌단다. 그는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 후 식료품 가게 운영을 시작했고 점차 자리를 잡으며  건물까지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약국도 함께 하고 있다. 또한 본인의 가족처럼 이민 오는 사람들을 돕는 일도 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중소기업육성사업을,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돈도 신용도 없는 이민자들에게 연결시켜주는 일이다. 또한 한국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미국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K1 International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 회사는 LA에 본사를 두고 있다.

 

“당진에서 살고 싶어요”

일로 인해 사업차 한국을 방문한 그는 친구인 당진YMCA 권중원 사무총장의 집에서 머물고 있다. 둘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YMCA 활동을 함께 하며 인연을 맺었고,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당진을 찾은 그는 이곳 당진이 휴스턴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석유화학이 주산업인 휴스턴과 제철산업이 주산업인 당진,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고 있으며, 또 두 도시 모두 대기 환경이 좋지 못한 것까지도 닮았단다. 그는 “미국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한국으로 돌아와 당진에서 살고 싶다”며 “그래야 이민으로 인해 멈춰 있었던 내 인생 시계가 다시 돌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늘 한국을 고국이 아닌 ‘모국’이라 불러요. 태어난 한국은 나의 어머니고, 어머니와 품 같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3년 안에 다시 당진에 올 거예요. 당진 사랑에 푹 빠져버렸답니다.”

 

최영기 씨가 전하는 생생한 이야기는 당진시대 팟캐스트 ‘무지개나라’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어플 팟빵 → ‘당진시대’ 검색→ 무지개나라)


한수미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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