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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으로 낳은 자식은 셋이지만 9남매 키우며 살았죠” - 면천면 성하리 김귀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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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김 귀 순씨
면천면 성하리

“뱃속으로 낳은 자식은 셋이지만 9남매 키우며 살았죠”

“고생이라면 어느 누구 부럽지않게 해봤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와서 30년이 넘도록 시댁식구 뒷바라지에 세월을 보냈으니까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눈물밖에 나오는 것이 없다는 김귀순(57세)씨.
한씨집안에 막내며느리로 시집왔지만 몇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시어머니를 모시며 맏며느리 역할을 해온 김귀순씨는 지금도 아흔살의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며 살고 있다.
“집도 따로 있고 장사를 한다는 중매장이 말에 시집왔는데 와서보니 방 두칸에 셋째시숙식구들과 시어머니가 살고 계셨어요. 신혼부부인 저희를 위해 시어머니는 동네마실을 다니면서 주무셨구요.”
결혼을 후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결혼하자마자 큰아이를 갖게 된 김귀순씨는 그때부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세상이 야속한 적도 많았습니다. 결혼한지 얼마 안된 상태에서 몇년동안 큰시숙 병수발을 들 때도 그랬고 셋째시숙이 돌아가시고 저에게 남겨진 6남매를 바라보면서 한탄도 많이 했지요.”
뱃속으로 낳은 자식은 셋이었지만 셋째시숙이 남기고 간 6남매까지 모두 9남매의 엄마노릇을 한 김귀순씨는 그래도 여섯조카를 끝까지 공부시키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단다. 20여년전 셋째시숙의 사망과 함께 남겨진 빚더미를 청산하는 일도 김귀순씨의 몫이었다.
“개인에게 빌린 돈은 갚을 생각도 못했어요. 농협에서 빌린 돈만 갚는데도 7년이 걸렸죠.”
모든 짐이 자신에게 떠맡겨지는 것 같은 생각에 식구들과 함께 큰댁처럼 도시로 나가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시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면천에 머물러 있는 김귀순씨. 오히려 질긴 고생에 질긴 정이 들고 만 것일까.
“9남매를 키울 때는 그렇게 어려웠는데 지금은 모두 장성해서 결혼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참 흐믓해요. 9명이 다 내자식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난날을 생각하면 때로는 속상하고 또 때로는 서럽고 괜시리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김귀순씨는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이 해야할 도리라고 생각되고 또 자식들에게 이만한 교육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시어머니 수의도 꿰매어 놓고 집도 입식으로 손질했다.
“아흔되신 어머니께서 건강히 계시다가 돌아가시는 걸 바랄 뿐이죠. 또 자식들은 저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고요.”
오늘도 김귀순씨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시어머니의 점심을 차려드리고는 고추하우스로 향한다. 벌써부터 고추에 병충해가 끼는 것이 요즘 김귀순씨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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