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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 입력 2018.07.23 14:21
  • 호수 1217

시인과 함께 읽는 시
이금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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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무더워지는 이런 여름날에는 마음이 시원해지는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싶다.

초여름 땡볕을 머리에 담뿍 이고
조막만한 모과가 툭, 툭 떨어진다
지구의 중심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거다
익기를 기다리지 않고 고스란히 바치는
모과 같은 사랑 있어 가을은 또 오는 거다
저토록 사무치게 기리는 누군가가 아름답다
      -백이운, 「願」전문

떨어지는 모과를 보면서 땡볕 지구 가을 사랑을 노래한 이 한편의 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생을 풍요롭고 사무치게 만드는가…. 그래서 미디어가 판치는 이 세대 가운데도 시는 살아 있는 것이리라. 시인들은 사랑을 받는 것이리라. 시는 시인의 시를 내가 읽고 감상하고 시적인 삶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시는 완성된다.

사람이 없는 겨울바다 모래사장에 벌써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그것은 어릴 적 내 발자국이었다. 새벽 눈 밟듯 조심스레 나는 조그마한 그 발자국 안에 들어섰다. 내 생애의 걸음 전부를 받아들이고도 손가락 하나의 여유가 남는 크기. 물결소리는 다시 바람이 되어 발자국을 하늘에 남기지 않았지만 나는 두루마리로 불덩어리 젖먹이 동생을 싸안은 어머니를 놓칠세라 시린 바람 정면으로 맞서며 공사 중인 남산동 신작로를 필사적으로 걸었었다.
삽 자국이 번득이던 울퉁불퉁한 흙덩이들이 언덕 같았던 길, 그때의 어머니 가슴을 불던 바람소리, 나이든 내 발자국이 회상의 모래사장에 찍혀 있는 네 살배기 어린아이 발자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겨울 광안리 아침 바다.
         -허만하, 「영천약국 가는 길」 전문

시인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네 살배기 어린아이를 만나러 한겨울 광안리 아침 바다를 찾아갔다. 어머니를 놓칠세라 시린 바람 정면으로 맞서며… 필사적으로 걸었던 네 살 배기 어린아이. 아픈 시인의 고백은 독자의 고백이 되어, 나를 위로하고 남을 위로하는 시. 그런 시가 정말 좋은 시가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다.
살아가는 기쁨 슬픔 아픔을 리듬에 실어 글을 쓰면 그것은 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면서 날마다 조금씩 성장해 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언젠가는 인생이 담긴 좋은 시 한편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더욱 자신을 성찰하며, 성숙시켜 나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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