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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백기순 전 당진시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
제2의 인생 ‘나의 삶’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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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퇴직 후 자유인으로 돌아가
10년 전 마음먹은 치유농장 개장의 꿈
색소폰·통기타·난타·요양보호사까지 ‘도전과 배움’

소들평야에 한여름 햇살을 가득 머금은 푸른 벼들이 바람에 일렁인다. 우강면 부장리 들판 한가운데 소박한 거처를 마련한 백기순 전 당진시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은 공직에서 내려온 뒤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는 “진정한 자유(自由)란, 자신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백 전 과장은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다.

어깨 수술로 퇴직 결정

“2017년 5월에 오른쪽 어깨 수술을 하고 한 달 동안 쉬었어요. 그해 10월에 다시 오른쪽 어깨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하고 6개월 동안 쉬어야 했죠. 한 부서의 책임자로서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게 직원들에게 미안했어요. 형식적으로 공직에 적을 두고 있느니 그만 자리를 내어줘야겠다고 생각해 퇴직을 결심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스무 살에 당시 당진군농촌지도소 송악지소에서 근무하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40년 가까이 그는 농업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농촌지도사로 일했다.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공무원들이 농업정책을 만드는 일이 많아지면서 탁상공론에 그친다는 비판이 계속돼 왔지만, 백 전 과장은 공직에 있는 동안에도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농업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는 정부의 새로운 농업정책과 기술 등의 정보를 자신의 경험과 버무려 농업인들에게 전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농업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서 공직을 보냈다. 농업이 미래산업이라고 하면서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농업·농촌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던 그는 “이제 정부와 대기업에 맡길 게 아니라 농업인들의 길을 터주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10년 전 마음에 품은 꿈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 속에는 자신만의 꿈이 있었다. 10년 전부터 퇴직 이후의 삶을 생각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사각사각 연필로 꿈을 적어 내려간 종이는 액자 안에서 어느덧 색이 바랬지만, 꿈을 향한 마음만큼은 여전히 빛난다. “주말농장 10년 간 설계 추진. 2022년 5월 개장.”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번호, 이메일 주소까지 바른 글씨로 새겨 놓고, 행여 마음이 흐트러질까 곱게 액자에 끼워두고 시시때때로 바라보며 꿈을 상기시킨다. 농장의 이름은 마을 이름을 본딴 ‘하리농장’이다. 액자에 명함도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백기순 전 과장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쑥쓰러운 너털웃음을 지으면서도 “오랫동안 생각하고 준비해왔기 때문에 퇴직 후 생각보다 일들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본래 원치리다. 선친께서 마련해 놓은 부장리 터전에서 그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하며 배우고 익혔던 기술들과 여러 정보들을 활용해 당진시민들은 물론 타 지역 도시민들과 외국인, 장애인, 노인 등의 쉼터가 되는 농장을 만드는 것이 그가 꿈꾸는 제2의 인생이다. 2022년부터 연소득 1000만 원부터 시작해 2032년까지 10년 동안 32억 원의 연소득을 창출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있다. 이미 들깨·참깨·마늘 농사는 물론이고, 200여 점에 달하는 화분과 다육이들을 보살피면서 하나하나 꿈을 이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매일매일 일지를 쓰면서 하루를 기록하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스크랩을 하거나 기록해둔다. 언젠가는 이러한 작은 궤적들이 그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기에, 그는 기록의 힘을 믿는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 많은 청춘

그가 이곳에서 하는 일이 농사와 농장을 준비하는 일 뿐만은 아니다. 색소폰과 통기타, 그리고 노래방 기계도 소박한 그의 거처에 자리 잡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여러 악기와 더불어 요즘엔 남부사회복지관에서 난타도 배우고 있다.

또한 커피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반가운 손님이 그를 찾아오면 그 자리에서 직접 커피콩을 갈아 구수하고 향긋한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하고, 밭에서 직접 딴 참외며, 옥수수까지 아낌없이 인심 좋게 내준다. 그가 계획한 2022년까지는 아직 4년이나 남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과 마음을 붙잡는 건 이미 이룬 듯하다.

최근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오래 전 식물보호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백기순 전 과장은 “식물보호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람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어느 날 문득 마음속에 꿈을 그리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어요. 악기도 배우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지난 40년 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지역사회와 타인을 위해 사는 일을 평생 해왔는데,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이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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