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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이야기] 당진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어울림팀 장가경 씨
당진 최초, 결혼이주여성 사회복지사

“다문화가족을 위한 사회복지사 되고 싶어”
독학으로 초·중·고 검정고시부터 대학 졸업까지
“시부모와 남편의 적극 지원이 원동력”
당진시대l승인2018.08.24 20:31l(1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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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와 본 사람이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한 것인지 알 것이다. 손짓발짓도 한 두 번이지, 마음이 급해지면 알던 단어도 생각이 나질 않는 게 외국어다. 어쩌다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날 때면, 서툴지만 한국어를 하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한국어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자격증, 초·중·고 검정고시를 연달아 합격한 결혼이주여성이 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졸업과 동시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장가경 씨를 만났다.

한국에서 평생 연인을 만나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가 열렸다며 세상이 들썩이든 그 해, 장 씨는 고향 중국을 떠나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처음엔 단순히 해외경험을 쌓아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중국 지사에서 배웠던 기계기술을 통해 해외연수의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평생 연인을 만나게 됐다. 같은 팀에서 일했던 그는 따뜻한 남자였다. 향수병에 외로울 때면 바다로 산으로 데려가 줬다. 서툰 한국말을 다정하게 가르쳐 준 것도 그였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가나다라 정도만 할 줄 알았어요. 당연히 한국생활이 쉽지 않았죠. 그땐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지금보다 훨씬 좋지 않을 때였어요. 그렇다보니 중국사람이라며 무조건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한국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마다 남편이 위로를 해줬어요.”

두 사람은 곧 결혼을 약속할 만큼 깊은 사이가 됐다. 하지만 양가의 반대가 심했다. 외국인이란 게 이유였다. 그 당시만 해도 국제결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대게 동갑내기와 결혼하는 중국에서는 다섯 살 차이도 매우 컸다. 그러던 차에 장 씨가 해외연수기간이 끝나 중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갔죠. 그런데 남편이 중국 천진에 있는 우리 집에 찾아온 거예요. 그 후에도 휴가 때마다 중국에 절 보러왔어요. 부모님도 그런 남편의 정성에 마음이 풀리셨고, 남편을 겪어보면서 좋아하게 되셨죠.”

시부모님 덕분에 한국어 배울 수 있었죠”

2004년 결혼과 함께 두 사람은 송악 봉교리 시댁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처음엔 결혼을 반대했던 시부모님도 타국에 시집 온 장가경 씨를 가족으로 따뜻하게 맞이했다. 한국어 강좌에 처음 데려간 것도 시부모님이셨다.

“돈 버는 건 당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우선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에 잘 적응하는 게 우선이라면서요. 그땐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없었어요. 시어머니가 당진시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한국어 강좌가 열린다는 걸 알고 절 직접 데려가셨었어요.”

장 씨는 결혼 후 곧 첫 아이를 임신해 2005년(슬기), 2006년(유리), 2008년(용환) 세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시부모님 덕분이었다.

“저희 시댁은 농사를 지어요. 그런데도 농사일을 안 시키셨어요. 제 수업이 있는 날에는 아이들도 봐주셨어요. 시부모님과 남편이 없었더라면 공부할 수 없었을 거예요.”

각종 자격증 공부하며 얻은 것들

장 씨는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게 된 후로는 운전면허증 시험을 공부했다. 두 번 만에 합격했을 땐, 가족들이 더 기뻐해줬다. 그 후 자격증 시험 공부가 이어졌다.

한식요리사자격증을 단번에 딴 그녀는 중식, 양식요리사자격증에도 합격했다. 제과, 제빵기능사에 이어 각종 컴퓨터 자격증도 섭렵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자격증 공부를 하는 사이 한국 생활이 자연스레 몸에 익은 것 같다. 공부를 하면서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연히 고향 친구들도 생겼다. 시험 공부를 하면서 한국어 실력도 늘어났다. 당진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오가며 다문화가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얻고 인맥도 생겼다.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것보다 부수적으로 얻은 것들이 더 많은 셈이다.

그러던 중 장순미 당진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의 권유로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됐다. 중국에서의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초등학교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검정고시 공부는 정말 재미있게 했어요. 학원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했거든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가며 했죠. 남편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장 씨는 초·중·고 검정고시를 모두 한 번에 합격했다. 내친김에 대학 공부에도 도전했다. 전공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취업이나 경제력을 생각하면 중국어를 전공해 통역사로 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회복지학을 선택했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뭐라고 많이 했어요. 통역사들보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보수도 적은데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한다면서요. 그런데 전 생각이 달랐어요. 제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나 건강가정지원센터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어요? 저도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일을 하면서 보람 있게 살고 싶었어요.”

낮에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저녁에는 집안일에 아이들을 돌봤다.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는 장 씨만의 시간은 밤 10시나 돼야 돌아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4년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 소망대로 당진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에게 좋은 멘토 되고파

“다문화 엄마들이 자주 털어 놓는 고민 중 하나가 자녀문제인데요. 아이들이 엄마가 창피하다며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학교 통신문을 번역해달라고 찾아오는 엄마들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죠. 전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어를 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썼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살려면 우선 한국말을 잘 해야지요. 당장 적은 돈을 버는 것보다 공부해서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게 멀리 볼 때 더 도움이 되거든요.”

장가경 씨는 앞으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고 싶다. 또 세 아이들에게 낯선 타국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멋진 엄마도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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