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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죽어서도 가져 갈 진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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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근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당진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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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 약혼 하고 떠난 월남전

이 사진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24세 때의 모습이다. 당시 고사포가 내 주특기였다. 이것만 4년을 맡았다. 송산면 송석리 출신의 나는 1967년 7월, 전역을 두 달 앞두고 월남전에 참전했다. 베트남 가기 전 약혼을 하고, 휴가 차 귀국했을 때 결혼했다. 그 후 1969년 11월 15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겪은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이 평생을 따라다니고 있다. 참전했을 때 하늘에서 비행기가 오가며 물을 이슬비마냥 뿌렸다. 우리는 시원하기도 하고 덕분에 모기도 안 물린다며 일부러 맞곤 했다. 그게 제초제 성분의 고엽제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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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와 논에서 벼를 벨 때였다. 조카가 나를 보더니 왜 제대로 낫질을 못하냐며, 벼를 다 흘렸다고 하더라. 뒤를 돌아보니 볏단이 모아져 있지 않고 다 흩어져 있었다. 근력이 없어서 볏단들을 다 흘렸던 것이다. 병원을 가서 방사선 검사까지 했지만 병명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이 고엽제 후유증이란 것을 안 것이 50세가 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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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통의 이유가 고엽제라니”

이 사진은 양승조 도지사가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것이 미국에서 발표되면서 21년 전 고엽제전우회 중앙회가 설립됐다. 당진은 2년 뒤인 19년 전에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당진시지회로 출발했다. 설립 당시 5명의 회원으로 단체가 시작됐다. 그땐 고엽제 후유증이 유전된다고 소문나 있어, 자신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을 숨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도 고엽제 후유증이 자녀에게 피부병 등으로 유전되는 경우가 있긴 했다. 그때부터 초대 회장을 맡았고, 현재 다시 재임해 당진시지회장으로 있다. 지금 당진에는 250여 명이 고엽제 환자로 등록돼 있다. 우리 회원들이 참 많이 고생했다. 여전히 그 고통으로 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고, 약을 한 보따리씩 들고 다닌다. 죽어서도 약을 가져간다고 할 정도로 여전이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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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2. 충남 대표로 청와대 방문

이 사진은 지난 2017년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충청남도 대표로 청와대에 방문했을 때 모습이다. 그때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김정숙 여사도 만났다. 이때 참석한 보훈자 중 내가 몸 상태가 가장 좋지 않았다. 나의 노고를 알아주며 환대해 주는 모습에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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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2. “피해, 유족 승계돼야”

 

이 사진은 지난해 9월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토론회에 충남대표 토론자로 참석했을때 발표했던 모습이다. 여러 국회의원 앞에서 내 지난 삶과, 우리 고엽제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발표했다. 그때 토론회에서 내가 주장한 것은 참전수당과 유족승계, 그리고 고엽제 등외를 없애자는 것이다. 현재 회원들은 피해수당만 받고 있다. 대부분 나이가 72세~75세로 많은 가운데 하루 빨리 참전수당을 지급해줬으면 한다. 또한 우리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남을 가족들을 위해서도 유족에게 수당이 승계돼야 한다. 나 역시도 내 아내와 가족이 많은 고생을 했다. 또 현재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피해 수준의 경도를 나눠 지원을 하고 있다. 겉이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속이 다 썩어 문드러진 것이 고엽제 환자들이다. ‘등외’가 하루 빨리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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