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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9.03.12 13:50
  • 호수 1247

[칼럼] 이동준 당진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청년들을 위한 꼰대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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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해이다. 밀레니엄 시대가 열렸다며 떠들썩하게 안주 삼던 꼰대들은 지금도 다들 “안녕하십니까?” 안녕은 하지만 스스로 “난 꼰대는 아니야”라며 자위하고 있을 꼰대님들과 ‘꼰대질’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꼰대 또는 꼰데, 이 말은 서울에서 걸인 등 도시하층민이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1년 2월9일 동아일보에서는 ‘영감 걸인’을 가리키는 은어라고 썼다. 통속소설 『서울은 만원이다』에서는 ‘나이 많은 남자’를 꼰데라 했고, 1966년 경향신문에서는 탈선한 10대들의 ‘아버지’를 가리킨다고 했다.


10대와 20대에서 ‘아버지’, ‘선생(先生)’, ‘나이 많은 남자’를 꼰대라고 부르는 판국에 아직도 “나는 꼰대가 아니야”라고 착각하는 분들께서는 꼰대질을 그만 두셔야할 때가 곧 도래한다. ‘꼰대질’이 무엇인고 하니,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시대착오적 설교를 늘어놓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AI(인공지능) 환경에서 자라온 밀레니엄 베이비들이 성인이 된 이즈음에, 꼰대들이 짜놓은 사회그물망에서 숨막히는 생존경쟁을 펼쳐가는 젊은이들을 보라. 미안하지 않은가? 일상에서 청년들을 ‘개빡치게’ 하는 것은 바늘구멍보다 작은 일자리이기에 앞서 꼰대들의 부질없는 꼰대질이다.


꼰대는 꼰대사회에서도 꼰대이다. 정치, 사상의 성향과 나이에 상관없이 꼰대는 꼰대질을 서슴지 않는 특성이 있다. 나아가 꼰대끼리 뭉쳐 집단 꼰대질을 해대는 경향도 종종 나타난다. 별것도 아닌 사안에 대해 그럴 때도 있지만, 그런 습성이 누적되어 민폐를 끼치는 사안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꼰대질을 자행하는 걸 보면, 사소한 꼰대질도 사회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여기까지 읽으며 조금이라도 불편하셨다면, 꼰대질을 줄여나갈 자격이 충분히 있으신 거다. 우리가 어디 ‘꼰대’라고만 불리는가? 지금까지 몸에 밴 습성이 젊은이들에게는 ‘한남충’으로도 불린다. 기성세대를 ‘꼰대’나 ‘한남충’으로 부르는 젊은이들이 하염없이 예쁘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면서 적어도 젊은이는 ‘꼰대’나 ‘한남충’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에.
달게 받자, 꼰대들이여!

이 순간부터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그래, 나는 꼰대다’라는 오기 좀 부리지 말고, ‘이거 또 꼰대가 되는 건 아닌가?’ 스스로 되물으며 밀레니엄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건설할 수 있도록 조심하며 곁을 내주자. ‘꼰대질’이 담배와 같아서 담박에 끊기는 어렵겠으나, 정말 많이 줄이도록 노력해서 청년들이 숨 쉬고, 움직일 공간을 만들자.

 

1) ‘빡치다’는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로 열받게 만든다는 뜻.
    앞의 ‘개-’는 ‘엄청’을 뜻하는 접두사로 봄.
2) 한국[韓] 남자[男]는 벌레[蟲]라는 뜻의 줄임말.
   이렇게 불필요한 설명을 하는 경우는 설명충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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