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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보고 싶은 열쇠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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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면 성산2리 이장

내가 군 복무한 곳은 중부전선 최북단인 6.25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 백마고지다. 현재 백마고지는 일명 열쇠부대인, 보병 제5사단인의 주둔 관할구역이다. 5사단은 내 젊은 시절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우리 사단은 “동작 그만!”이라는 말에 떨어지던 낙엽도 멈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기가 강했던 곳이다. 초소에서 북한 군인들이 운동하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로 북한과 인접했다. 비무장지대를 앞에 두고 철책을 지키는 업무기 때문에 군기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들춰보니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다시 한 번 부대를 가보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언젠가는 다시 한 번 꼭 가볼 생각이다.

1. 3개월 동안 GP서 먹고 자며 복무
나는 전역을 바로 앞두고 경기도 연천의 신망리에 위치한 177GP에서 3개월 간 복무했다. 몽산 정도 높이의 이곳에서는 한 번 들어가면 3개월을 이곳에서 자고 먹고 복무해야 한다. 감시 활동을 하기도 하고 철책 안으로 들어가 비무장지대에서 야간 감시 활동도 한다. 이 사진 뒤에 있는 곳이 내가 생활했던 곳이다. 근방 300m 안에는 지하 숙소와 식당, 농구대가 전부였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식당 밥이 맛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2. 2-1. 함께 했던 동기들
같이 복무했던 동기들이다. 작은 GP에서는 30명과 군견병 한 마리와 함께 생활한다. 불시에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우리 모두 총과 총알을 소지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서로 간에 일이 있어도 절대 때리면 안 된다. 혹여 갈등이 있더라도 바로 사과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그렇다보니 우리 모두 사이가 좋았다.

2-1 역시 군 복무할 때 함께 복무했던 동기들이 만들어 준 앨범이다. 이 안에 내사진과 동기들이 직접 쓴 편지 등이 있다.

3. 소대장과 함께

철책 앞에서 당시 소대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며 저 뒤가 우리가 생활하고 복무했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부식을 받을 때도 경계 근무를 서야 한다. 언제 어떻게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경계가 삼엄한 곳이다. 전역 열흘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부고 소식도 이틀 후에야 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바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 뒤에야 당진으로 출발해 대방리에서 청량리역을 도착해, 용산에서 버스를 타고 합덕에 와 면천 집까지 왔다.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장례를 다 치르고 다시 군대로 돌아가 3일 후에 제대했다.

4. 4-1. 대남방송에 시끄럽기도

대북방송을 하던 대형 스피커 앞에서 찍은 모습이다. 처음에 갔을 땐 대북방송에, 대남방송까지 듣다 보면 시끄러워서 못살 정도였다. 북한에서 송출하는 대남방송을 듣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4-1 사진은 식당 옥상에서 진행된 공연 때 모습이다. 당시 4인조 밴드가 왔었다. 일부러 북한에게 보여주려고 옥상에서 했던 기억이 난다.

5. 탁구만 해도 즐거워

마지막 사진은 탁구 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 GP에는 농구대와 탁구대 하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재밌게 생활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이곳을 가고 싶다. 또 그때 함께 복무했던 동기들과도 만나고 싶다.

 

김영성 면천면 성산2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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