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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꿈꾸고 상상하고 행동하라”
홍순조 계성초등학교 수석교사

아버지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 없어 시작한 공부
명예와 성공 쫓던 삶에서 행복 추구하는 삶으로
한수미l승인2019.06.22 13:05l(12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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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면 봉생리에 자리한 ‘사랑의 정원&의재 아뜰리에’는 홍순조·이재련 교사 부부의 작은 별장이다. 삶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밑그림을 그려놓은 꿈들이 채색돼 가는 곳이다.

별장 곳곳엔 재미난 것들이 숨겨져 있다. 화실과 텃밭이 있고, 푸른 잔디는 미니골프장이 되기도 한다. 또 지인들과 함께하는 파티장소가 될 때도 있다. 20여 년 간 부부가 손길을 더해가며 차근차근 만들어 온 정원이다. 하지만 이 별장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을 향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홍순조 수석교사의 과거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따라다닌 가난

전북 진안 출신인 홍순조 수석교사는 “시골에 살면 지게 지는 일밖에 못한다”는 아버지의 등살(?)에 홀로 대전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어린 고모 집에 얹혀 1년을 살았고, 이후에는 부모님까지 모두 대전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지독히 가난했다. 술을 늘 곁에 두고 살았던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았고, 대신 어머니가 고무 대야를 이고 다니며 생선을 팔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홍 교사는 어머니를 돕고 싶어 매일 새벽, 키 만큼 쌓인 신문 100부를 돌렸다. 그렇게 한 달 꼬박 일해 받은 돈 8000원을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드리곤 했다. 그래도 가난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짙은 그늘 같았다. 그럴 때마다 대전 도심이 한 눈에 보이던 집 뒷산에 올라 각오를 다졌다.

“일요일 7시마다 산에 올랐어요. 떠오르는 태양과 발아래 놓인 대전 도심을 보며, 나는 왜 저 좋은 집에 살지 못하는지, 좋은 차를 왜 타지 못하는지 생각하며 가난을 느꼈어요. 그러면서도 언젠가 나도 저런 삶을 살겠노라 결심했죠.”

▲ 중학교 1학년 무렵, 대전 산성동 집 뒷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다지던 때

“너 장학생이라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신문을 배달했다. 2학년이 될 무렵 동네 아저씨가 그를 보며 “동산중학교 장학생이라며?”라고 말했다. 당시 홍 교사는 430명 중 370등으로 장학금을 받을 리 없는 성적이었고, 이는 술에 취한 아버지의 거짓말이었다.

그때 홍 교사는 “그 얘기를 듣고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성적이면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수 없기에 아버지의 거짓말이 탄로 날까봐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 없었던 그는 신문배달을 그만 두고 공부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제집 하나 살 돈도 없이 교과서가 새까매지도록 공부했고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주는 것은 모조리 외웠다. 또 헌책방과 도서관에서 남이 푼 문제집을 가져다가 공부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공부한 결과 전교 50등 안에 들며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에 성공했다.

▲ 미국 유학 시절 찍은 가족사진

청전벽력 같았던 ‘백혈병’ 선고

사실 홍 교사는 정치인이 꿈이었다.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전쟁이 나도 교사는 죽이지 않는다”며 어렸을 때부터 교사가 될 것을 주문했다. 교대가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입학했고 24살에 졸업해 첫 발령받은 삼봉초등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지난 2004년 국비 해위연수의 기회를 얻었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2년 여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대학 총장의 꿈을 안고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교원대 박사과정을 밟았다. 하루종일 논문을 작성하고 밤에는 대학 강의를 나갔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며 박사과정을 마칠 즈음 감기에 걸렸다. 좀처럼 낫지 않는 감기에 병원을 가서 진단받았는데 청전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백혈병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고 2년 간 투병생활을 해야만 했다.

가치의 전환점

“그때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담당 의사가 ‘용한 의사보다 하느님이 쎄다’며 ‘죽을 사람이 살기도 하고 살 사람이 죽기도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하느님의 뜻이니 착하게 살라는 말이었어요. 그때부터 최소 하루에 한 명은 행복하게 해줘야 겠다는 게 삶의 목표가 됐어요.”

투병생활을 하면서 그의 삶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 권력과 명예 등 외적 성공만 쫓는 삶에서 배려와 행복의 가치를 깨달았다.

이후 그는 원당초와 계성초에서 근무하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아침마다 등굣길에서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친구, 그리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전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사실 홍 교사의 ‘사랑의 정원’은 아버지를 위한 곳이었다. 어렸을 땐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단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 악착같이 성공을 쫓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점점 이해가 됐고 셋째 아들인 홍 교사와 함께 살고 싶어 했던 아버지를 위해 땅을 샀다. 하지만 땅을 사고 1년이 지났을 무렵 세상을 떠났다.

▲ 별장 ‘사랑의정원&의재 아뜰리에’ 모습

“상상하고 꿈을 꾸세요!”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살던 집에서 길렀던 앵두와 살구나무를 사랑의 정원으로 옮겨와 심었다. 꿈 꿨던 팔각형 집을 짓고 잔디를 심었다. 그리고 텃밭도 일궜다. 그렇게 키운 나무들은 어느새 그의 키를 훌쩍 넘어 섰다. 매년 작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는 그는 지난해에는 양평에서 구매한 호박돌로 만든 연못을, 올해는 닭장을 만들었다. 또 가는 길 곳곳에 핑크뮬리를 심었으며 나무 아래에는 작은 장식품들을 두어 멋을 더했다.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남은 11년 동안 이곳을 가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저는 항상 5년 뒤를 그려요. 닭장도, 팔각형의 집도, 정원도, 모두 그림으로 그렸어요. 꿈꾸고 상상하고 그림을 그린 뒤 행동으로 옮겼죠. 그러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더라고요.”


한수미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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