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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9.08.24 15:46
  • 호수 1270

아로니아 익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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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종인 당진수필문학회장/전 문화원장

해를 거듭할수록 봄 가뭄이 더해간다. 주민이 공동으로 이용해 오고 있는 지하수도 공급해 줄 의욕이 나지 않았다. 지난해에 수확한 아로니아 생과를 다 팔지 못하고 1톤을 퇴비장에 버렸는데 애써 가꿔서 무엇하나. 하늘이 주는 대로 쓰고 말겠다는 심보가 작동했고 원래 이 녀석이 한발(旱魃)에 강한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내버려 뒀는데도 예상수확량이 5톤은 될 듯 싶다.

5년 전 귀농 5년차이던 해 텃밭에 아로니아를 심었다. 종편방송이 연일 아로니아의 효능을 알렸고 옻나무, 콩 등을 심어봤지만 소득이 마땅치 않은데다가 힘에 부치는 노동을 피할 수 없을까 궁리 끝에 농사가 가장 수월하다는 아로니아를 마지막 작목으로 선택했다. 물론 판로를 감안해서였다. 소비가 안정돼가던 블루베리가 수확기의 고온과 일손부족으로 인하여 아로니아 작목으로 전환되는 추세였다. 아로니아는 일명 블랙초크베리라고도 하는 베리류로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쑥과 함께 살아남아 강인한 생명력이 유명세를 타게 된 작물이다.

당시만 해도 세계생산량의 8할을 차지하는 폴란드산이 원액 형태로 일부 수입되는 정도였다. 생과시세가 kg당 3만원을 호가하고 있어 수입원액을 생과로 환산한 가격 1만원을 훨씬 넘어서는 추세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 단견(短見)일 줄이야…. 기술센터를 통해서 연구회를 조직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자임했고 담양, 무주 등 지자체가 권장육성하고 있는 지역을 견학하는 등 고품질 생산에 주력했다. 농사를 ‘풀과의 전쟁’이라는 세간의 속설을 비웃기라도 하면서 연중 두 세 차례 풀을 뽑고 무농약 재배로 친환경인증을 받아왔다.

2011년도 한·EU자유무역협정으로 작년 한 해 폴란드산 아로니아가 분말로 560톤이 수입되면서 국내산은 설자리를 잃었다. 한편으로 3만 불 소득 국민의 입맛에 아로니아는 상쾌한 맛은 못 된다. 높은 당도에도 불구하고 떫은 맛 때문인데 약은 입에 쓰다지만 좌우간 생과 소비에는 걸림돌이다.

정부가 1차, 2차, 3차 산업을 아우르는 6차 산업을 주장하지만 생산농가의 입장에서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6차 산업을 영위하는 농가가 간혹 있긴 하지만 다수의 농가는 원물로 유통해서 돈을 만져야 하는 실정인데 아로니아를 수확해 봤자 팔 데가 없다며 수확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인건비 들여 따느니 그냥 둔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수세(樹勢)가 약해진다.

고심 끝에 아로니아를 캐내는 농가도 있지만 폐농보다는 태양광시설을 권장하고 싶다. 올해부터 작물 위에 태양광시설을 해서 땅에는 작물재배, 상부에서는 전기생산이 가능한 영농형 태양광시설을 보급한다고 한다. 아로니아도 현재 지정된 사과, 배, 포도 작목에 추가하는 혜택을 줘야만 자유무역으로 인한 농업인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국농산물이 아무리 싸더라도 안전성을 생각하는 소비자에겐 국내산이 선호될 것이고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수급이 안정되리라고 본다. 서양속담에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면 의사의 얼굴은 파래진다’는 말이 있다. 매일 아침 아로니아 열매나 가루를 토마토와 갈아먹는 일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가루를 음료에 타서 마시고, 포도 또는 사과와 생즙으로 추출한 혼합주스를 온 가족이 즐긴다. 청량음료 대신에 아로니아 쥬스를 찾는 손자녀들이 보석 같이 예뻐 보인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일제 강점기에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메밀밭과 여름 달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일본과 우리나라가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는 올 해 여름 달밤 ‘아로니아 익을 무렵’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 ‘먼저 성장한 나라가 늦게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면 안 됩니다’ 고 한 표현이 준엄하면서도 성숙된 모습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수출국가인 우리나라가 보호무역을 벗어나 자유무역을 추구해야 한다면 정부의 육성의지가 없는 한 우리나라 농업은 경쟁력을 잃게 되고 농촌의 노령화와 맞물려 농업 농촌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아로니아가 익을 무렵이고 보니 농민과 농업 농촌을 살리자는 애국운동 못지않게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도 아로니아 애용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얼마나 좋으면 ‘신이 내린 선물’, ‘왕의 열매’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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