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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두렵지 않았던 젊은 시절

김동명 월남참전자회 당진시지회장 한수미l승인2019.11.05 08:57l(1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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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공항에 마중나온 가족들
나는 1969년부터 1년 반 동안 월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복무했다. 이 사진은 그때 함께했던 전우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지원해서 월남전에 참여했다. 그때는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을 정도로 젊었고, 하고 싶었기에 지원했다. 동네에서 꽤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이었던 내가 그냥 베트남에 가버렸으니 고향에 남아있던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을 것이다. 그렇게 떠났다가 복무를 마치고 부산 공항으로 귀국하던 날, 그때 온 가족이 마중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2. 아버지 환갑잔치
내 나이 서른 살 무렵, 아버지 환갑잔치 당시에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을 온전히 보관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군데군데가 찢어져서 아쉽다. 맨 오른쪽이 나의 아내(김길려)고, 가운데 앉은 아이가 아들, 그 아내 옆 아이가 내 딸이다. 아버지는 환갑을 치르고 63세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81세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신평면 신당리에서 태어나 신평초(35회), 합덕중(15회)을 졸업하고 인천공고를 졸업했다.

3. 하루가 다르게 변해
월남전에 참전했을 당시에 베트남은 황무지였다. 그 넓은 땅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후 베트남은 6~7차례 전적지 순례 혹은 가족 여행으로 다녀왔다. 그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베트남을 보면서 놀라곤 한다. 이 사진은 베트남 하롱베이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일부러 태극기가 새겨진 옷을 입고 다녀왔다.

4. 예쁜 나의 아내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나는 1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아내는 신평면 운정리 출신인데, 우리 동네까지 예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소문을 듣고 나는 운정리로 찾아갔다. 실제로 아내를 보니 너무 예뻐, 아내 집을 찾아가 결혼하겠노라고 밝혔다. 당시 세 명의 처남은 누나가 아직 젊다며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아버지 친구이기도 했던 장모님이 처남들을 설득시킨 덕에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결혼은 옛날 방식으로 아내 집에서 치렀다. 그날 눈이 허벅지 높이까지 쌓일 정도로 폭설이 내렸다. 그래도 결혼하겠다며 신당리에서 운정리까지 걸어갔다.
아내는 지금도 예쁘다. 30여 년 넘게 대아우렁이식당을 운영하면서 많은 일을 했다. 지금은 남들에게 베풀며 봉사하고 있다. 참 멋진 사람이다.

5. 참전용사 위해 봉사하고파
지난 6월경 월남참전자회 당진시지회 사무실로 어기구 국회의원과 김성권 대한노인회 당진지회장이 방문했다. 그때를 기념하면서 촬영한 사진이다. 앞으로 참전 용사들을 위해 봉사하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 김동명 월남참전자회 당진시지회장은?

- 1947년 신평면 신당리 출생
- 신평초(35회) 합덕중(15회)
    인천공고 졸업
- 현 월남참전자회 당진시지회장


 


한수미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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