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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9.11.25 11:23
  • 호수 1282

백야 김좌진 장군 순국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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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복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사무국장 / 충남 장례선양단 팀장

우리 충남장례선양단 지부장 외 11명이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하며 백두산을 다녀왔다. 먼저 중국 목단강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백두산 북파로 이동했다.

우리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장백산)에 올라가 눈보라 치는 정상에서 백두산 천지와 만주벌판과 개마고원을 내려다봤다. 수백 수천 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말을 타고, 뛰고, 살고, 호령하던 백두산 정상에서 우리는 나라를 위해 축문을 읊엇다.

“우리 선양위원들은 젊은 나이에 목숨을 걸고 나라에 청춘을 바쳤습니다. 아름다운 삼천리 반도강산을 반드시 지켜 5000년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을 길이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하옵소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주옵소서! 대한민국의 자유평화통일을 이룩해주옵소서!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중국에서 되찾게 하옵소서!”

다음날 숙소에서 만주벌판 2시간을 거쳐 백야 김좌진 장군 순국지를 방문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 3300여 명을 섬멸하는 업적을 이뤘다. 그리고 1930년 1월 24일 오전 9시경 금성정미소 앞에서 고려공산당청년회원 박상실에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김좌진 장군은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찬서리가 고국 생각을 돋구는구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 말인가 당장의 아픈 마음 쓸어버릴 길 없구나”라는 유언을 남겼다.

백야 김좌진 장군 순국지는 한중우의 공원으로 두 나라 간의 문화, 역사, 경제 교류의 목적으로 세워졌다. 순국지 산시는 1928년 9월부터 이곳에 거주하시면서 1929년 7월에 ‘한국총연합회’를 조직하고 주석에 취임하여 만주 동포들의 연합과 교육을 추진했다. 하지만 동시에 항일 세력과 연합해 대일항전을 준비하던 중 조선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41세 짧은 생애를 만주벌판에서 마쳤다.

중국 정부에서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 중에 유일하게 인정하는 독립운동 열사는 황해도 출신 안중근 의사와 충남 출신 김좌진 장군, 그리고 윤봉길 의사다.

다음 날 우리는 중국독립운동가 팔녀투강 순국지 목단강을 방문해서 묵념을 들였다. 8명의 여성 중 안순복, 이봉선 열사는 조선족 출신으로 중국독립운동가로 칭송을 받고 있다. 중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우리 조선족 여성 2명이 총을 들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열세부족으로 이곳 목단강에서 투신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려 지금은 열사의 칭호를 받고 있다.

우리 선양위원은 우리 조상님들의 기개가 숨어있는 만주벌판과 호령하던 백두산 천지를 둘러보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굳은 의지를 다짐하고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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