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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26 1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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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없는 당진

비극없는 당진

그래도 당진은 아직 괜찮은 편인가. 또 하나의 사회적 비극으로 각인된 인천 인현동 한 상가의 화재현장에서 교복입은 수십명의 어린 주검들이 들것에 실려 나오는 모습에 적어도 우리지역에서는 교복입은 청소년이 마음대로 드나드는 유흥업소는 없으리라 생각하고 싶지만 상황은 그렇게 편치만은 않은 것 같다.
밤 열시가 넘은 시간에 당진읍내 시장오거리 부근, 합덕 구터미널 주변을 둘러보고 근심되지 않는 사람은 대단히 낙관적 성격인 사람일 것이다. 인구 많은 대도시처럼 수천명의 어린학생들이 걸거리를 메우고 있지는 않지만 사복으로 갈아입은 청소년들이 손에 핸드폰을 들고 불빛 심야를 평정한다. 즉, 자정을 전후해서는 거의가 애들 상대로 장사를 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큰일났다, 말세다 하는 말을 함부로 하고 싶지는 않다. 2,500여년 전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젊은이들의 타락을 걱정하는 말세론이 여러 자료에서 확인된다.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기존 가치관을 뛰어넘는 행동에 대해서 안정희구세력의 바램과 연결되는 현상이다.
분명히 시대는 계속 바뀐다. 그에 따라 가치관도, 객관성도 변화한다. 하지만 변화에도 알맞은 속도가 생명이다. 그 적절한 속도를 무시할 때 항상 이변과 파문이 일어난다. 젊은 행위들을 무조건 탈선이나 미풍양속의 붕괴로 보기 보다는 풀어놓고 대처해야 한다. 차라리 모두 까놓고 어른들 역할이나 다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화성 씨랜드 참사나 인현동 화재사건을 바라보는 입장은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도대체가 부모, 교사, 경찰, 인허가 공무원, 소방서 등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어른이 할 수 있는 예방조치는 단 한가지도 없었다. 당연히 사고 안나는 것이 비정상이다.
평소 점잖기로 평판있는 언론인 출신, 어느 국회의원의 정치적 수사라기에는 너무나 절절하고 애달픈 외침을 보았다.
'정말 그냥 지나가선 안된다. 비장한 용단을 내려 관련자를 처벌하자. 냉혹하리만큼 처벌하라'는 절규는 무엇을 뜻하는가?
만약 우리지역에 비슷한 사건이 안 생긴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면 끝장이다. 맡은 바 각 분야에서 규정대로 점검하자. 유착관계, 영업규정이행, 소방시설을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자. 우리의 어린자식들을 하늘나라로 먼저 앞세우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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