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삽교호방조제 건설이 시작되기 전까지 운정리 앞바다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으로 각종 수산물의 주요 서식지였다. 이곳에서는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어업 방식 중 하나인 ‘눈장’이 이뤄졌다.
눈장은 말짱(말뚝)을 바다에 박아 그물이 들물(밀물)에는 드러눕고, 날물(썰물)에는 일어서서 그 안으로 물고기가 잡히게 하는 방식이다. 눈장의 경우 그물이 고정식이다 보니 불편한 점이 있었다. 이후에 이점을 보완해서 나온 것이 이동이 용이한 안강망이다. 두 가지 모두 그물의 구가 넓고 길이가 긴 자루 모양의 그물을 사용했고,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은 자루의 가장 안쪽 부분인 ‘불뚝’에 모이게 됐다. (※참고자료: 「소사벌 25호」 평택문화원, 2010)
“눈장으로 강다리, 황어 등을 잡았지. 말을 박고서 그물 쳐놓고 하루에 두 번. 아버지가 하셨어. 해방되고서 그때가 상당히 먹고 살기가 어려울 때야. 국민학교 다니면서 (아버지) 뱃일 도와주고, 나도 자작으로 좀 하고 그랬지. 지금 운정양수장 요 앞, 말하자면 지금 삽교호방조제 내수면 안에서 한 거지. 배에 5m가 넘는 나무를 싣고 가. 끝을 삐족하게 깎아서. 참나무여야 해. 여럿이서 흔들흔들 내두르면 뻘이니까 박히거든. 5m마다 하나씩 한 50개를 박지. 거기다 그물을 위 아래로 묶어서 썰물 때 걸린 고기들을 털어 올리는 거야.” (김상래 씨)
눈장에 쓰이는 말뚝은 물을 먹어도 단단한 참나무를 사용했다. 3월이면 말뚝을 바다에 가져가 박아 1년 내 사용했다. 서리가 오고 날이 추워지면 다시 수거해뒀다 이듬해 다시 사용했다. 김상래 씨가 기억하는 눈장은 1950년대의 일이다.
“생선을 털어오면 아주머니들이 제방에 와서 광주리에 담아서 가져다 팔고 그랬어. (공포 말고 현 운정양수장) 여기도 배를 몇 대씩 댔었지. 그전에 물 빠지면 자연뻘이 한 3km 가까이 드러나는데 무척 넓었지. 어른들은 눈장 그물을 하시고, 난 얼민장이라고 꽃게, 준치 잡는 걸 조금 해봤어. 스무 살도 되기 전 일이여.”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