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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인영태 우강면 번영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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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굳건한 솔뫼마을의 노일꾼

별처럼 굳건한 솔뫼마을의 노일꾼
인 영 태 우강면 번영회장

한보 청문회가 연일 생중계되고 있으나 온 국민들의 마음 한자리는 한결같이 무용론으로 귀결지어 가는 것 같다. 있으나마나라는 것이다. 묻는 쪽의 자질문제를 논하는 사람도 있고 답하는 쪽의 성실성에 힐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결론적으로 구우일모(九牛一毛)의 소득밖에 없고 금환탄작(金丸彈雀)이라 할 수 있으니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리라 생각한다. (금환탄작-황금으로 만든 탄환으로 참새를 쏜다는 것으로 소득은 적은데 쓸데없는 비용만 들이는 것을 비유한 말)
춘추시대에 제나라에는 안영이란 재상이 있었다. 공자님도 그를 형님처럼 대할 정도로 사람됨이 올곧은 데다가 지략이 뛰어난 위에 언변이 좋고 담력도 컸다. 그는 키가 작은 것으로 더 유명해졌다고 할 것이다.
어느해 안영은 초나라 영 왕에게 사신으로 간 일이 있었다. 영 왕은 유명한 안영의 콧대를 한번 꺾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간단히 수인사를 나눈다음 영 왕은 포문을 열었다. “제나라는 인물이 없나보군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길가는 사람들이 어깨를 마주 비비고 발꿈치를 서로 밟으면서 지나다닐 정도로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필 경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단 말이오.” 안영의 키가 작음을 비웃으면서 하는 말이었다. 한 나라의 사신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었지만 그 당시 초나라는 가장 강국이었기 때문에 거침없이 그런 말도 할 수 있었다.
이 오만한 발언에 대해 안영은 이렇게 맞받아친다. “저희 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골라 보내는 것이 관례입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냅니다. 신은 작은 사람중에서도 작은 사람이기에 초나라로 오는 사신이 된것입니다.”
얼굴이 새파래진 영왕은 마침 그때 옥리가 죄인을 끌고 지나가자 그 옥리를 불러 세웠다. “여봐라 그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제나라 사람입니다.” “죄명은 무엇인고?” “절도죄입니다.” 그러자 영왕은 안영에게 제2탄을 쏜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오?” 이 우문에 대한 안영의 현답은 이렇다. “강남쪽에 귤이 있는데 그것을 강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살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는 걸 보니 그건 역시 초나라의 풍토 때문인 듯 합니다.” (南橘北枳-남귤북지)
좧덕으로 부덕과 싸우고 지혜로써 지혜없는 자와 싸운다면 냇물을 이루도록 피를 흘리는 백병전을 벌일것도 없이 극히 손쉽게 정복의 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좩 맹자의 말씀이다.
인영태씨!
인영태씨가 몇대째 뿌리를 내려가며 살고 있는 곳은 우강면 송산리, 일명 솔뫼마을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솔나무 숲이 우거진 동산이라고 해서 좧솔뫼좩였고 또 소나무 동산의 끝자락에 자리했다고 붙여진 이름이 좧솔뫼좩다.
인영태씨가 태어나고 성장하며 살기를 금년들어 60년 된 솔뫼는 성 김대건 신부님이 탄생하고 7세까지 사시던 바로 그 마을이다. 성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에 솔뫼에서 탄생하셨다. 천주교의 대박해로 7세때 가산을 파하고 용인으로 피난을 가셨다. 그후 김대건 신부님의 가문은 4대가 멸하는 순교를 당한 집안이 되었다.
인영태씨는 철들 때부터 어른들에게 김대건 신부님의 가문의 멸족을 귀에 젖도록 들었으며 천주교에는 눈도 돌리지 못하도록 엄명을 받고 성장했다. 매일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터가 있는 곳을 지나다니면서도 딴전을 피면서 지나쳤다.
이제는 솔뫼성지로 널리 알려진 곳. 전국에서 매일 수백명의 참배객들이 모여드는 거룩한 곳이며 축복받은 땅으로 변해갔다. 인영태씨는 축복받은 땅! 거룩한 성지를 갖게 된 곳을 고향으로 두고 60여 평생동안 살고 있고 또 35년동안 좧신흥건설좩이라는 건축업을 하면서 큰 성장을 보게 된 것도 김대건 신부님의 은공으로 생각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인영태씨는 그동안 자기 앞가림에 열중하다 보니 고향을 위한 일을 소홀히 했기에 이제는 해야할 일이 있을 것 같은 소명의식에 미력이지만 1년전부터 우강면 번영회장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영태씨는 지방 건설업자로 크고 작은 건설현장을 누볐다. 어려움도 애로도 많았으나 근검하고 성실하게 또 양심껏 일한 결과로 오늘의 기반을 잡았다. 그동안 많은 건설현장이 있었지만 꼭 내세워 말한다면 우강농협의 신청사를 꼽을 수 있다.
인영태씨가 우강면 번영회장을 맡으면서 첫 작업이 중앙전파관리소와의 관계였다. 송산리에 위치한 중앙전파관리소로 인하여 반경 1km이내는 건축을 제한당하며 특히 4층 이상의 건축물은 허가를 내주지 않는 당국에 수차 건의하고 방문하여 제한을 풀어주도록 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 지금은 많은 성과를 받아내 고도제한은 완화를 보게되었다.
우강면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농공단지가 없는 면이다. 그래서 농외소득이 없어 면민들의 생활이 타지역에 비해 반감됨을 알고 송산리 소재 공동묘지를 타지역으로 옮겨줄 것을 군에 건의하고 있다. 공동묘지지역은 약 7천여평에 달하는 넓은 공간이라 이 묘역을 옮겨 농공단지를 조성하자는 것이 인영태 회장의 의견이며 면민들의 일치된 소망이다. 이 계획은 초보단계에 있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끈기있고 돌격형인 인영태 회장이면 빠른 시일내에 면민의 염원이 성취되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 대다수의 의사임을 밝히는 것이다.
올바른 판단력을 가진 사람은 태양의 찬란함은 없어도 별처럼 움직이지는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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