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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시줄다리기 이수자 최우진·이홍주 씨
줄에 담긴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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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 심사 합격
생업 병행하며 3년 이상 전승 교육 받아
지원·혜택 없어도 전통 잇는다는 자부심

▲ 왼쪽부터 최우진 씨, 이홍주 씨

너무 굵지도 않게, 너무 얇지도 않게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면서 새끼를 꼬는 게 쉽지는 않다. 거친 지푸라기를 수도 없이 꼬고 또 꼬고 손바닥을 비벼대야만 이수자의 길을 넘어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줄틀을 세우는 것과 연못에 넣어 보관하는 것까지 모두 옛 전통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의 줄다리기가 이뤄져 왔지만, 기지시줄다리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건 오늘날까지 옛 원형이 거의 훼손되지 않고 대대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이수자 심사 합격

지난달 20일, 기지시줄다리기 박물관에서 기지시줄다리기 이수자 심사가 진행됐다. 전수생이었던 최우진(45), 이홍주(44) 씨가 이번 심사에 임한 가운데, 문화재청에서 온 5명의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맡았다.

시험은 박물관 공터에서 이뤄졌고, 응시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시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했다. 사진촬영도 불가한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두 전수생은 기지시줄다리기의 역사를 묻는 질문에 상세히 설명했다. 긴장을 많이 했던 탓에 최 씨는 줄 꼬는 도구 등의 명칭을 묻는 질문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이어 줄틀을 세우고 줄을 꼬는 등 줄 제작 과정을 재현했다.

최우진 씨는 “심사가 한 명씩 이뤄졌기 때문에 긴장이 많이 됐다”며 “무엇보다 더운 날씨에 야외에서 줄틀을 세우고, 줄을 꼬는 작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홍주 씨는 “지난해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를 앞두고 큰줄 제작에 한 달 반 동안 함께 했다”며 “이 같은 경험들이 심사를 받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며칠이 지나고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에 현수막이 걸렸다. 약 5년 만에 진행된 이수자 심사에서 두 전수생 모두 합격했다.

전수생→이수자→전수교육조교→보유자

기지시줄다리기를 비롯한 전통문화의 전승체계는 전수생을 시작으로 이수자, 전수교육조교, 보유자(기능·예능)로 이어진다. 보유자의 경우 흔히 ‘인간문화재’로 불린다.

기지시줄다리기 기능보유자는 현재 구자동 씨가 유일하다. 故 장기천 옹 또한 기능보유자였으나 지난 2월 작고했다.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에는 구자동 보유자에 이어 유위영 전수조교 1명과 이수자 21명, 전수생 8명이 소속돼 기지시줄다리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전수생에서 이수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3년 동안 전승 교육을 받은 전수생 중 성실히 교육에 임한 전수생이 심사에 통과해야만 이수자가 될 수 있다. 그동안에는 보유자가 전수생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으나, 올해부터는 문화재청에서 직접 이수자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더욱 엄격한 기준과 까다로운 평가를 거쳐야만 이수자가 될 수 있단다.

어렸을 때부터 본 기지시줄다리기

한편 이번에 이수자 심사를 통과한 최우진 씨와 이홍주 씨가 기지시줄다리기 전수생으로 들어온 것은 각각 지난 2016년 4월과 지난 2017년 1월이다.

송악읍 기지시리 출신으로 기지초등학교, 송악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최우진 씨는 어린 시절부터 기지시줄다리기가 익숙했다. 현재 용왕제를 지내는 ‘샘골’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짚을 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기지시줄다리기가 열릴 때면 할머니와 함께 공동묘지(현 송악문화스포츠센터)에 올라 그 장면을 구경하곤 했다. 20대 청년이 되어서는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에서 암줄과 수줄을 연결하는 비녀장을 메고 시연장까지 옮기는 역할을 하곤 했다.

송산면 당산리 출신의 이홍주 씨는 당산초를 다니다 대전으로 이사 갔고 지난 2013년에 고향 당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듬해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기지시줄다리기를 접했다. 이 씨는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인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위원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며 “2년 넘게 축제위원으로 일하면서 기지시줄다리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기지시줄다리기를 제대로 배우고자 보존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며 “전수생 활동 역시 기지시줄다리기의 전통을 잇고자 줄 제작 분야를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누가 뭐래도 좋아서 하는 일

기지시줄다리기 전수 과정은 줄 제작과 줄다리기 분야로 나뉜다. 두 사람 모두 줄 제작 분야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매달 진행되는 이론교육과 수시로 실시하는 실습교육에 3년 이상 참여했다. 경제적 지원이 있는 것도,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기에 전수생으로 들어왔다가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생업을 이어가면서 시간을 쪼개 교육에 참여해왔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최우진 씨는 “인테리어 업체와 식당을 운영하면서 교육을 받았다”며 “두 가지 일을 감당하지 못할 때는 사업체는 사람을 쓰고, 나는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고 말했다. 때때로 ‘일도 많고 바쁜데 뭐하러 이것까지 하느냐’고 꾸짖듯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로지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이기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반면 식당을 운영하는 이홍주 씨는 “손님이 많은 바쁜 시간대를 피해 교육을 받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서 “주위에서도 부정적인 반응보다 대단하다며 긍정적으로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길

이수자가 된 두 사람은 지금까지 해온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당진의 역사이자 우리나라의 전통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은 기지시줄다리기의 명맥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이 있죠.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돼 온 기지시줄다리기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전통에 무관심하고, 맥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어 무척 아쉽지만, 미래 세대들이 관심 갖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기지시줄다리기가 계속해서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도 또한 보완됐으면 합니다.”(최우진·이홍주)

 
>> 최우진 이수자는
-1976년 송악읍 기지시리 출생
-기지초·송악중·고등학교·순천향대 졸업
-송악읍 반촌리 우진닥트인테리어 대표
-송악읍 반촌리 고깃간 대표
-송악읍 기지시리 거주

>> 이홍주 이수자는
-1977년 송산면 당산리 출생
-대전자양초·대전동중(현 우송중)·대전동산고·한밭대 졸업
-시곡동 도안동감나무집 대표
-송산면 금암리 거주

박경미 기자 pkm9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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