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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29 10:27
  • 호수 1313

“당신은 내 운명”
우강면 공포리 이윤학·전옥희 씨의 인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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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암 판정…치매에 뇌졸중까지
“끝까지 내 손으로 남편 돌보며 살 것”

 

전옥희(84) 씨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남편 이윤학(85) 씨의 상태를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전 씨는 세 번의 암 판정에 이어 5년 전 치매를 앓기 시작했고, 뇌졸중으로 쓰러지기까지 한 남편을 요양보호사 도움 없이 직접 병간호를 하고 있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무릎이 다쳤음에도 그는 “내가 덜 자고, 덜 먹을지라도 내 힘이 닿는 한 끝까지 남편을 돌볼 것”이라고 말한다.

“남편은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성실하고 착실하게 일했던 사람이에요.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을지언정 몸과 마음은 참 깨끗한 사람이었어요. 가여운 남편 옆에서 울고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더니 오늘날까지 왔네요.”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결혼생활

우강면 공포리 출신의 전 씨는 9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그는 농사짓는 부모 아래서 남부럽지 않게 사랑받으며 자랐다. 전 씨는 23세의 나이에 중매로 면천면 문봉리 출신의 남편 이 씨와 결혼하며, 슬하에 3남매를 낳아 키웠다. 가난한 집 7번째 아들로 태어난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무척 힘들었다.

순하디 순한 남편은 사람이 너무 좋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다보니 전 씨는 집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들기도 했단다. 어느 날에는 너무 힘에 부쳐 젖먹이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갔다가, 가슴이 퉁퉁 부어 모유가 쏟아지는 바람에 집에 두고 온 아이가 생각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도 있었다고.

췌장암, 간암 그리고 위암까지

하지만 가난은 고생도 아니었다. 세상의 모진 풍파는 전 씨가 50살이 채 되기도 전에 찾아왔다. 30여 년 전 남편이 췌장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당시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도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그래도 남편을 살려야 한다며 수술을 강행했고 운 좋게 남편은 점차 회복했다. 남편이 잘 버텨줬기에 불행이 끝난 줄 알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췌장암에 걸린 지 7년 만에 남편이 간암에 걸렸다. 평생 일만 하면서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한 남편이 또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전 씨는 하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결국 남편은 수술을 통해 간의 60%를 떼어냈지만 3년 뒤 위까지 암이 전이돼 위암 수술까지 받았다. 전 씨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과 조카 및 남편 친구들의 도움으로 병원비를 충당했다”며 “남편의 몸이 성치 않았기에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그때부터 내가 가장이 돼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암을 앓기 전부터 전 씨는 방문판매부터 식당, 공사장, 김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일을 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남편은 어딨냐고 물을 때마다 군대에 가 있다고 이야기했단다. 전 씨는 “친정에 아이들을 맡겨가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면서 “옛날에 고생한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에서 다들 놀러갈 때면 나는 돈을 벌어야 하고 남편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가지 못했다”며 “그럴 때마다 속상해서 울곤 했다”고 회상했다.

남편의 이상한 행동

고된 병수발이 채 끝나기도 전에 5년 전부터 남편 이 씨는 치매를 앓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남편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전 씨는 거실 소파 아래와 침대 밑에 숨겨진 닭튀김과 곶감, 막걸리를 발견하면서 치매 증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당시 700만 원이 있던 남편 통장 잔고는 어느새 0원이 돼 있었고, 주문한 적 없는 새로운 TV와 오토바이가 집에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치매에 걸린 남편은 마당에서 넘어지면서 뇌졸중까지 겹쳤다. 현재 거동조차 하지 못한 채 방에 누워 지내고 있으며, 전 씨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전 씨는 “돈 벌어오느라 남편이 치매에 걸린 줄도 몰랐다”며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 가니 치매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몸도 안 좋은데 치매에 뇌졸중까지 걸려 착잡했다”고 덧붙였다.

요양원에서 남편 다시 데리고 오기도
하지만 전 씨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센터에 남편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요양보호사나 간병인도 두지 않았다. 오로지 혼자 힘으로 5년 동안 남편을 돌봤다. 주변에서는 전 씨를 걱정하며 몇 개월만이라도 남편을 요양기관에 맡기자고 했지만 그는 늘 반대했다.

심지어 자녀들이 고생하는 전 씨의 모습을 보고 몰래 남편을 요양기관에 보내기도 했지만 전 씨는 그날 바로 남편을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내 남편이니까, 내 자식들의 아비니까 내 손으로 직접 돌보는 것이 맞다”며 “남편을 내 손으로 직접 보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인심이 좋아 친구들과 자녀, 조카들이 안부전화도 많이하고 자주 찾아온다”며 “그럴때마다 남편이 반가워하며 미소를 짓는다”고 전했다.

“남들은 나에게 지지리 복도 없다고 해요. 하지만 나는 숱한 고생을 하며 열심히 살아온 이 사람을 놓아 버릴 수 없어요. 남편도 제가 있어 좋다고 해요. 저는 끝까지 남편 옆에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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