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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26 1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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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정치의 중심지였던 원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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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병으로 6.25 참전…30개월 간 포로생활
제9대 국회의원 선거 즈음 구터미널 들어서

<편집자주> 지난해 당진문화재단에서는 원도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당진 원도심 이야기>를 발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고 또 떠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원도심에 대해 당시 사진과 함께 지역의 원로 4명을 인터뷰해 구술을 채록한 사업이다. 누군가의 인생은 지역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책 속에 잠들어 있기엔 아쉬운 이야기 중 일부를 발췌해 지면에 싣는다.

▲ 이정진 씨 / 더불어민주당 당진지역위원회 고문

1934년에 태어난 이정진 씨는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오랜 세월 당진의 야권 정당의 실무자로 일했다. 이 씨에 따르면 군사정권이 이어졌던 80년대에도 당진은 주변 도시들에 비해 야권이 강세였다. 서른 살에 당진에 내려온 그는 당진농협 개성지점 부근에 터전을 잡고 현재까지 살고 있다.

“고향은 서울인데, 6.25전쟁이 나면서 고모부가 계신 당진으로 가족들이 모두 내려 왔지, 난 전쟁이 나자마자 학도병으로 참전했어. 그리다 1.4후퇴 때 강원도 횡성 전투에서 인민군에게 잡혀 포로가 됐지, 북에서 포로생활을 30개월 동안 하다가 휴전 회담 포로 교환 때 다시 남으로 넘어왔어. 그리고 처음 가족들이 있는 당진에 내려왔지.”

이정진 씨가 군 제대 후 당진에 처음 내려온 건 1955년이었다. 그의 나이 스무살 적이다.

“그때 내려와 보니 당진은 지금 원도심에나 집이 여러 채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논이 었어. 서울에서 새벽 6시에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당진에 도착하면 저녁 6시였어.”

당시 원도심이 당진지역의 유일한 중심지였던 만큼 정당 사무실도 모두 원도심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유제연 전 국회의원 선거 사무장을 맡으면서 정당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 유제연 국회의원 사무실은 화순여관이던가 그 자리에 있다가 지금 왕창체육사가 있는 그 골목으로 옮겼지. 그때 왕창체육사 옆에 황금당인가 하는 금은방이 있었고, 사무실 앞 집에 국밥을 파는 식당이 하나 있었어. 그러고나서 다음 선거에 사무실을 차부(구터미널)로 옮겼지. 차부 상가 2층에 사무실을 열고 1년쯤 있다 유신이 선포됐어.” 

1972년의 일이다. 그해 11월 21일 유신헌법이 확정돼 이듬해 2월 27일 제9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당진은 충남 제7선거구로 서산과 함께 후보를 냈다. 이 선거에서 신민당으로 출마한 당진 출신 유제연 씨가 당선됐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즈음 구터미널이 들어서면서 그 주변으로 상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지. 그때부터 지금의 원도심이 확장된 형태를 갖추게 된거야.” 

유신체제 아래 선출된 제9대 국회의원의 6년 임기가 1979년 3월로 마감됐다. 이후 제10대 선거에서 당진 출신 후보의 낙선으로 국회의원 사무실은 당진연락소가 됐다.

“유제연 씨가 떨어지고 한영수 씨가 당선되면서 국회의원 사무실은 서산에 있고, 당진에는 신민당 연락소만 남았지. 그때 신민당 연락소장을 내가 맡았어. 시장 안에 새마을금고 자리 있지, 그 앞에 목욕탕이 있는데 거기에 사무실을 냈지. 한영수 의원 당진연락소 소장을 맡고 있던 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의회가 해산됐지.”

이정진 씨는 그 이후로도 당진의 정계 사정과 더불어 읍내의 변천사를 이어갔다. 혼란스러웠던 중앙 정당정치의 변화는 곧바로 지역 정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역사의 현장은 지금 사라졌거나 모습을 달리했지만, 그곳을 지켰던 지역민의 기억 속에는 제법 또렷하게 찍힌 사진들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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