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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1.07.19 19:56
  • 호수 1365

송전탑으로부터 소들섬을 끝내 지키리라
-농심이 짓밟히고 경찰에 질질 끌려갔던 그 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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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계 우강면 송전선로 반대대책위원회 부장리 공동대책위원장

 

2021년 7월 12일 오전 9시. 넓은 우강평야를 기반으로 한 삽교호 내 소들섬을 가까이 두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우강은 김대건 신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천주교 박해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천주교 순례객이 솔뫼성지에 몰려들고 있다.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집회를 강행하게 된 아침,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다. 집회 장소에 나가자 웬 경찰이 그렇게나 많은지 놀랐다. 집회를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한전의 굴삭기는 이미 진입할 논 앞에 대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논으로 굴삭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40여 일이 지나면 추수할 모가 굴삭기에 의해 처절하게 뭉개지는 광경은 괴롭다 못해 참담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집회가 진행됐다. 규탄사와 호소문이 발표되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굴삭기 작업은 이어졌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농민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데 경찰은 굴삭기를 멈추게 할 생각은 않고 집회 중인 주민들의 동태만 살폈다. 11시가 되어갈 무렵, 70대 중반의 어르신이 굴삭기가 깔아 뭉개고 지나간 논에 뛰어들어가 굴삭기 앞을 막았다. 작업을 못하는 상황이지만 굴삭기의 시동은 켜있어 다들 긴장하고 지켜보았다. 한 시간 가량 지나 작업자들이 점심식사를 하러가느라 작업을 잠시 멈췄다. 

동네 분들이 많이 떠나고 30명이 채 안되는 사람들만이 현장에 남았다. 굴삭기 앞에 선 노인은 점심식사도 거르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분 혼자 둘 수 없어 다른 사람과 함께 논에 들어가 세 명이 굴삭기 앞을 지켰다. 

점심식사 시간이 지나자 작업자가 다시 굴삭기 시동을 걸었다. 뜨거운 열기와 매연을 내뿜는 게 마치 우릴 위협하는듯 했다. 경찰이 우리에게 논에서 나오라고 했고, 작업자는 굴삭기를 움직여 우리가 옆으로 쓰러지게 위협했다. 솔직히 겁도 났지만 꾹 참고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렇게 두 번 반복하다 굴삭기가 멈췄으나 시동은 계속 걸려 있어 한여름 무더위에 엔진의 열기까지 더했다. 분노감에 눈물이 울컥 북받쳐 올랐지만 참고 견뎌냈다.억울하고 분했다. 

그렇게 4~5시간이 흐른 뒤 여경들이 동원됐다. 우리를 끌어내라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어쩔 테냐, 위협을 가해도 참고 견디리라. 삽교호 소들섬을 지키리라. 이렇게 마음 먹었다. 하지만 5명의 경찰관들이 달려들어 사지를 들어 올렸다. 억지로 끌려가는 고통보다, 버텨내야한다고 다짐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슬펐다. 

그렇게 버둥대고, 끌려가고, 질퍽한 논바닥을 뒹굴고…. 참혹했던 것 같다. 강제진압과 연행으로 우강면 송전선로 반대대책위를 와해시키려는 것 같았다. 내가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남편은 대책위를 추슬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입술을 깨물며 견뎠다고 말했다. 

경찰차에 질질 끌려가 짐짝처럼 차 안에 떠밀려 들어갔다. 경찰서에 도착할 때까지 펑펑 울었다. 지역을 지키고자 했을 뿐인데, 그저 슬펐다. 한전이 철탑을 꽂겠다며 삽교호 소들섬을 장악하려는 이 상황이 정말 참담했다. 우리 지역의 자연환경을 지킨다고 8년을 버티고 버텼는데, 무엇을 잘못했기에 공권력이 주민들을 짓밟는 것인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조사실에 들어가니 곧바로 현행범이라며 수갑을 채웠다. 현행범이라고? 우리가 범법자라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 여경에게 수갑을 풀어달라고 말하니 그냥 가란다. 논에 빠져 진흙 뒤범벅 되었는데, 손에 수갑까지 차고 있는 꼴이라니, 그냥 오줌을 싸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동네 주민들이 수갑을 풀어주면 도망이라도 간다는 말인가? 인권유린이 이렇게 벌어지는구나 참담함을 느꼈다. 

조사를 받고 난 뒤, 옆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은 남편을 만났다. 집으로 귀가하는 차 안에서 남편은 내 손을 꽉 잡았다. 마중 온 차량 안에서는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집에 도착하자 눈물을 가득 머금은 남편의 눈에 핏발이 선 것을 보았다. 

남편은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 경찰에 끌려가던 아내가 윗옷이 걷어져 속옷이 보이고 가슴이 노출되는 상황이 계속되었는데, 강제연행을 지시하는 경찰이나, 나의 사지를 들어 올린 경찰이나, 그 누구도 옷매무새를 덮어주려거나 상황을 중단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를 끌어내려는 경찰관과 많은 동네 사람들 앞에서 그대로 노출됐다.  

그런 나를 바라보다 참다 참다 나를 감싸 안으려는 남편을 경찰 3명이 팔을 꺾으며 제압했다. 얼마나 서로 뒤엉켜 밀치며 몸싸움을 벌였는지, 남편이 입고 있던 조끼가 너덜너널해진 것을 보고, 남편이 힘들었을 상황을 떠올리니 괴로웠다. 남편은 그때의 심정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  없다고 했다. 그날 밤, 밤새 남편 손을 잡고 많이 울었다. 

그리고 울면서, 다짐했다. 아픔과 참담함을 잠시 묻어두고 삽교호 소들섬, 그 소중한 곳을 지켜내리라. 고통도 차츰 견뎌 내리라.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며 기억이 흐려지기보다 남편이 전한 참담했던 상황이 머릿속에 짙어져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트라우마처럼 집회 이후 그날의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혼자 앉아 있으면 자꾸 눈물이 흐른다. 삽교호 소들섬을 지키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눈물이 난다.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듯이 삽교호 소들섬을 지키는 날까지 아픈 기억을 잊으려 노력할 것이다. 마음도 다시 추슬러 소들섬을 지키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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