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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1.09.14 12:56
  • 호수 1372

[기고]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구본세 국민건강보험공단 당진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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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내 나이 10대 후반에 부모님을 만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에 보았던 혈기왕성한 아버지도, 자식들 키우느라 억척같은 어머니도 많이 늙으셨다. 그래도 아직까지 건강하게 계신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하룻밤 머물고 헤어질 시간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몸 건강해라’, ‘내 걱정을 하지마라’며 얼른 가라고 손을 흔든다. 뒤를 돌아봐도 아직 그 자리에 계신다. 자식 뒷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이젠 들어가셨겠지’하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집으로 돌아가시는 부모님 뒷모습에 마음을 짠하다. 당당했던 체구는 어쩌다 저리 야위었는지, 등은 왜 저리 구부정하게 굽었는지, 걸음걸이는 왜 저렇게 힘겹게 보이는지…. 너무나 왜소해진 부모님의 쓸쓸한 뒷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분들은 각각 38년 전과 27년 전 그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시고 떠나셨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노은 

누구에게나 뒷모습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감추거나
꾸밀 수 없는 참다운 자신의 모습이다.
그 순간의 삶이
뒷모습에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볼 때
내 앞에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면
내 발걸음도 경쾌해진다.
뒷모습이 쓸쓸한 사람을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도 울적해진다.
얼굴이나 표정뿐만이 아니라
뒷모습에도 넉넉한 여유를 간직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면 이 세상은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지 않겠는가.
앞을 향하여 걷기에도 바쁘고
힘겨운 삶이지만,
때때로 분주한 걸음을 멈추어 서서
뒤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어디 외출할 때면 거울 앞에서 얼굴을 다듬고 옷매무새를 고치느라 한참을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본다. 말하자면 보이는 부분을 치장하는데 여념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것이 있다.

거울에 비치는 곳은 그렇게 정성 들여 치장하면서 거울에 비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곳은 어찌하고 있는지? 마음까지 비춰주는 거울이 없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퍽이나 다행스런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거울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만일 당신 앞에 마음까지 비추는 거울이 있다면 그때도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그 거울 앞에서 제대로 고개를 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씻어 얼굴은 말끔하지만 정작 깨끗해야 할 마음 속은 먼지와 때로 뒤범벅되어 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기에.

그렇다. <어린왕자>를 쓴 쎙떽쥐베리가 말했듯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이야 돈만 내면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마음에 바르는 화장품은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진실과 애정, 이웃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성실과 겸손이라는 마음의 화장품을 어찌 돈으로 살 수 있겠는가. 아름다움을 위해선 그 어떤 노력도 서슴지 않으면서 비대해진 마음의 군살을 빼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사람. 그것이 어쩌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에 미용을 열심히 해보아야 한다. 그럼 굳이 얼굴을 꾸미지 않더라도 그 이상 몇 배로 아름답다는 찬사를 듣게 될 것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보이지 않는 곳이 아름다운 사람,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부터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 참으로 그런 사람이 그립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소박한 담장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부의 뒷모습에 사소한 것에 감동하는 것이 작은 행복의 시작이 된다. 행복은 소유의 만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볼 때 결코 행복해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세상이 모르는 행복이 있다.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행복 말이다. 

나누기 좋아하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면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그런 사람 옆에 서 있으면 말이 없어도 편안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사람들은 흔히 외모나 직업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그것에 의하여 좋고 나쁨을 규정한다. 상당히 계산적인 판단이다. 그것에는 사람의 향기가 없다. 단순히 기계적인 그런 판단은 섣부른 만큼의 오류를 지니고 있다.

그 오류 속에는 아름다운 사람과 만날 수 없다는 불행이 포함되어 있다. 겉을 버리고 안을 보는 겸손한 사람만이 진정 변치 않을,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지금 그대 곁에 ‘자기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없다면 스스로 자신의 안을 보는 지혜가 없음을 인정할 일이다. 

인디언들은 멀리 길을 떠나면 가다가 꼭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달리는 말이 지치지 않아도, 길을 잃지 않아도 말이다. 이유는 뒤따라오는 자기 영혼을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뒤따라오는 영혼처럼 내 뒷모습을 정성들이 살펴야 내면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이왕이면 어깨도 펴고 걸음도 당당하게 걸으면서 말이다. 

우리의 뒷모습에는 저마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왔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우리가 힘들 땐 등을 토닥거려주고, 뒤에서 안아주는게 그래서인가 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앞모습만 꾸미고 사는 삶보다는 거짓이 없는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기억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코로나 감염병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때, 가장 중요하고도 신뢰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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