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9:24 (금)

본문영역

  • 인물
  • 입력 2021.10.30 09:30
  • 호수 1378

지역주민과 함께 했던 마리아양품 이제 추억속으로
세상 사는 이야기 30여 년 간 마리아양품 운영한 임경자 할머니(합덕읍 운산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례명 ‘마리아’를 따서 지은 ‘마리아양품’
5번의 이사와 8번의 수술로 힘든 시간 겪기도
“기성복보다 직접 만든 옷이 더 인기”
지역 내 취약계층 노인들에게 의류 나눔

“작년까지만 해도 바느질을 곧잘 했는데, 이제는 눈이 안 좋아져서 바늘구멍이 안보여요. 장사하면서 다리, 어깨, 허리, 심장 등 수술만 8번을 하다 보니 힘이 들어 더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됐어요. 오랜 시간 동안 저와 함께해온 마리아양품을 정리하게 돼 무척 서운합니다. 이제 남은 인생은 천주교 신자로서 기도에 더욱 열중하며 살 거예요.”

합덕읍 운산리에 자리했던 옷가게 마리아양품이 지난달 30일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마리아양품을 운영해 온 임경자(89) 할머니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세례명인 마리아를 따서 지은 ‘마리아양품’을 개업했다”며 “그동안 5번이나 이사해 가며 옷가게를 운영해왔는데도 꾸준히 마리아양품을 사랑해주고 찾아준 손님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엄마 닮아 타고난 손재주”

임 할머니는 193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임 할머니의 부모님이 일본으로 이민을 갔고 그는 ‘게이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다 12살에 여동생과 함께 당숙이 있는 당진에 와, 면천 어느 가정에서 두 아이의 보모로 5년 간 생활했다. 당시 그 나이 또래 어린 소녀들은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살았다. 임 할머니는 “결혼하기 전까지 두 명의 아이들을 업어 키웠다”며 “어느 날 이웃집 아저씨가 ‘어려서부터 힘들게 일하면 나이 들어 관절이 다 상한다’고 말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임 할머니는 결혼하고 나서 6남매를 낳아 길렀다. 동시에 13년 간 떡방앗간을 운영키도 하고 옷을 직접 만들어 장에 나가 팔았다. 그는 “친정엄마를 닮아 손재주가 좋아 옷을 만들어 팔아 돈을 모았다”며 “사채로 인해 모은 돈을 몽땅 잃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생 끝에 환갑을 앞두고 마리아양품을 문 열게 됐다”면서 “당시 기성품보다 내가 만든 원피스와 투피스 정장이 인기가 좋았다”고 전했다.  

운영 초기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옷가게 한편에 방을 만들어 생활했다. 7년 동안 방에 화장실이 없어 공중화장실을 사용해가며 어려운 생활을 했음에도 임 할머니는 자신이 만든 옷을 좋아하는 고객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합덕의 숨은 봉사자”

한편 임 할머니는 마리아양품을 운영하면서 나눔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암환자들을 위해 청주에 있는 한 시설에 꾸준히 후원하고, 중증환자들이 모여있는 논산의 한 보호시설과 요양원, 치매센터 등에도 방문해 의류를 나눴다.

임 할머니가 마리아양품을 운영하면서 연을 맺게된 자원봉사자 김산옥 씨는 “임 할머니가 1년에 수십벌의 옷을 독거노인 취약계층 등에 전달하곤 했다”며 “팔던 옷을 주기도 했던 임 할머니는 합덕의 숨은 봉사자”라고 칭찬했다. 이어 “과거에는 모두 형편이 어려웠다”면서 “취약계층 노인 대부분이 임 할머니가 기탁한 옷을 입고 살았다”고 전했다. 임 할머니는 “의류 나눔 하는 것을 알게 된 서울 거래처에서 좋은 일을 한다며 옷을 더 주기도 했다”며 “꾸준히 기부를 해오긴 했지만 이렇게 소개할 만한 일은 아니라 괜히 쑥스럽다”고 말했다.  

“살면서 여덟 차례 수술을 했어요.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 약속했죠. 수술을 잘 받게 되면 하느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욱 봉사하면 살겠다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봉사했어요. 마리아양품을 정리하면서 더 이상의 의류 봉사는 어렵게 됐지만 제 옷을 전달받은 분들이 좋아했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게요.”

김예나 기자 yena0808@hanmail.net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