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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25 20:06
  • 호수 1394

손인교 전 당진새마을금고 이사장 별세
“진정으로 김대중을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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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암살 사건 후 이승만 정권 반대 투쟁 나서
김대중 가택연금 당시 수차례 찾아가 대화 나눠
반민주 독재정권에 맞서 정치활동…민주화에 헌신
새마을금고·당진번영회 설립 및 터미널 대책위 활동

정당인으로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운동에 젊음을 바쳤던 지역의 대표적인 원로 손인교 전 당진새마을금고 이사장이 지난 22일 영면에 들었다. 한평생 김대중 전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며 민주당에 몸담고 살아온 손 전 이사장은 이제 후배들에게 후일을 맡기고 95세의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 반대 운동  
1928년 석문면 삼화리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때 일찍이 인천으로 유학을 떠나 홍익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해방 이후 1948년 이승만 정부가 탄생한 뒤 신탁통치에 반대했던 김구 선생의 암살 사건을 겪으면서 그는 이승만 정부를 비판하며 사회운동에 참여했고, 그때부터 평생 야권에 몸담았다. 

손 전 이사장은 대학 시절 조선전보통신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낙향한 그는 석문면 장항리에 있던 염전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1960년 12월, 33살의 나이로 민선 석문면장으로 당선됐으나, 다음 해인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면장 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직후 경찰이 찾아와 박정희 정권을 지지한다는 서명을 요구했고, 군부독재에 동조할 수 없던 그는 날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항상 경찰이 따라붙어 다니는 주요 사찰 대상이 됐다. 

야권 인사들의 사랑방 춘원다방 
석문면장을 그만 둔 뒤, 손 전 이사장은 부친이 내어준 논 6마지기를 팔아 춘원다방을 샀다. 당진성당 진입로 모퉁이에 있었던 춘원다방은 독재정권 시절 당진지역 야권 인사들의 사랑방이었다.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 및 인권운동에 매진했던 故 이명남 목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춘원다방을 하면서 고통받은 이야기는 말로 다 할 수 없지.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는 정치깡패들이 날마다 다방에 찾아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거야. 그러니 장사를 할 수가 있나. 하루는 그 중 하나가 박정희 정권을 지지한다고 하면 장사를 잘 되게 해준다잖아. 내가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유리컵을 주방에 던져서 와르르 물건들이 다 깨졌어. 하도 화가 나서 주먹다짐을 했지. 그 바람에 또 경찰에 잡혀갔지.” 

김대중을 만나다 
1970~80년대 군부독재정권에 대항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십 차례 가택연금을 당하면서 손인교 전 이사장은 당진지역 인사들을 데리고 자택에 감금돼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시로 찾아갔다. 이렇게 맺은 인연을 시작으로 그는 대표적인 ‘동교동계 인사’로서 일관되게 김대중 노선을 따른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김천환 전 당진군의회 의장은 “당시 손 전 이사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가까이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때부터 김대중이라는 사람,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에 매료됐다”며 “일평생 변함없이 민주당에서 김대중의 뜻을 이어 정치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으로 김대중을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김대중의 발자취를 따라 반민주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면서 혼돈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었던 그는 국가 권력에 의한 감시와 탄압을 받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당진군수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고, 평화민주당 당진지역위원장, 열린우리당 당진군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더불어민주당 당진지역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했다. 그는 아무리 연로하고 노쇠했어도 선거철 각종 정당·후보자 행사에 참석해 후배들을 격려했다. 

서민 위한 당진새마을금고 설립 
특히 지난 1978년 당진새마을금고의 전신인 당진신도새마을금고를 설립하고 2004년까지 26년 동안 이사장을 맡아 새마을금고를 운영했다. 돈 없고 ‘빽’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심하다, 금융기관이 많지 않았던 당시에 새마을금고를 설립하고 시장 상인 등 서민을 대상으로 금융사업을 펼쳤다. 2001년에는 당진새마을금고와 송악새마을금고를 통합해 당시 자산 456억 원, 회원 1만800여 명의 대형금고를 탄생시켰다. 

이밖에 故 최익준 씨와 당진번영회 설립을 주도하며 총무를 맡아 일했고, 당진버스터미널 비상대책위원장, 당진시승격추진위원회 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당진지역 발전과 지역현안 해결에 앞장섰다. 

이제는 고인이 된 손인교 전 이사장과 함께 동시대에 정치 및 사회활동을 함께했던 이홍근 전 충남도의원은 “손 전 이사장은 대단히 강직하고 훌륭한 분이었다”며 “당진번영회 창립에 기여하고 서해안 고속화도로를 서해안 고속도로로 승격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진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지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당진을 지켜온 민주인사”라면서 “며칠 전까지 연락했었는데, 갑작스러운 부고에 무척 비통했다”고 덧붙였다. 

김천환 전 의장은 “손 전 이사장이야말로 양심적이고, 바르고,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며 “경우에 맞지 않는 일에는 어떤 역경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의 신앙에 따라 오직 하나님 뜻에 정성을 다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故 손인교 전 이사장의 일대기는 당진시대 기사 및 당진문화재단에서 발간한 <당진 원도심 이야기>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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