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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읍면소식
  • 입력 2022.04.15 21:00
  • 수정 2022.10.28 16:54
  • 호수 1401

[우리마을 이야기 2] 송악읍 도원리
분홍빛 복숭아꽃 만발하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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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가래기·황새골·고도원이 통합된 마을
사방에서 보아도 삼각형인 ‘삼각산’
용이 승천하다 떨어져 죽은 ‘용머리’

<편집자주>
당진시에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 상황에 놓여 있는 마을이 있다. 본지에서는 마을의 전설과 옛 지명, 보호수를 비롯한 자연환경, 열녀문·효자비 등 다양한 마을의 이야기와 마을이 가진 자원을 발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으로 담아낼 계획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 보도합니다. 

 

▲ 드론으로 촬영한 송악읍 도원리

“옛날에도 우리 마을엔 꽃이 무척 많았어요. 나중에 커서 보니 그 꽃이 모두 복숭아 꽃이었더라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도원리는 꽃으로 아름다운 마을이에요.”(안경재 부녀회장)

송악읍 도원리는 복숭아 과수원이 많은 마을이라 복숭아 도(桃)자에 근원 원(源)자를 써서 ‘도원리’라고 이름 지어졌다. 지금 이 마을에는 55가구에 9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1960년대만 해도 지금보다 2배가 넘는 주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서정식 이장은 “현재 우리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의 95%가 원주민”이라며 “70대 이상의 고령인구가 대부분으로 한 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치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옛날이나 지금이나 주민들이 변함없이 마을을 사랑해줘 감사하다”며 “아기 울음소리 들어볼 날이 왔으면 좋겠고 주민들이 건강하게 지내 도원리의 뿌리를 지켜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 (왼쪽부터) 서정식 이장, 인경재 부녀회장, 주민 인희창 씨, 엄주산 노인회장, 주민 송화섭 씨, 주민 김윤진 씨

매년 2회 장 열리기도 

도원리는 조선시대에 큰가래기(곡촌), 황새골(대조), 고도원 등 3개의 자연부락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 마을로 통합됐다. 가래기는 마을 지형이 가락처럼 둥글게 휘어져 생긴 이름이다. 송악읍지에 따르면 조선 후기 학자인 김정호가 쓴 한국 지리서 <대동지지>에 ‘금가라기’란 기록이 송악읍 도원리의 가래기로 추측되고 있다. 옛날 이곳에서는 음력 8월 15일과 섣달 그믐날(음력 12월 30일)만 시장이 서 가락포구에서 잡은 풍성한 해산물과 해풍 맞은 마늘 등을 물물교환식으로 판매됐단다. 

주민들에 따르면 가락포구가 내려다 보이는 당산 정상에는 1970년도까지만 해도 당집이 있었다. 서정식 이장은 “당집에서 어민들의 풍어와 마을 주민들의 평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제사가 화려하게 진행됐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고 말했다. 이어 “가래기에는 임천(任天)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해안마을 시절에 유일하게 논농사를 짓던 곳이었다”면서 “수확을 하늘에 맡긴다고 해 임천이라 불렸으며,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천수답이었다”고 말했다.   

▲ 과거 마을 주민들의 모습

황새 서식지였던 마을회관

황새골은 넓은 골짜기에 위치해 ‘한샛골’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황새골’이라고 전해져 지금도 황새골이라고 부른다. 일설에는 지형이 황새가 우렁을 찍어먹는 형국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서정식 이장은 “1960년대 말까지 황새골에 속하는 마을회관 주변에 왕솔밭이라고 불리는 큰 소나무 단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60년 전에도 황새가 서식하고 있었다”며 “현 마을회관 자리가 황새 서식지였다”고 회상했다. 

황새골 중앙에는 삼각산도 있었다. 산 모형이 사방에서 보아도 삼각형의 형태가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 김윤진 씨는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어 신평면 한정리 방향으로 불을 통해 통신하면 한정리에서는 아산 인주 방향으로 다시 연락했다”며 “지역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서정식 이장은 “1960년대 말까지 봉화대의 윤곽이 남아 있었다”면서 “점점 산업화 되면서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 1985년 송악읍 도원리는 대전지방검찰청으로부터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됐다.

삼각산은 주민들의 쉼터 역할도 했다. 옛날에는 삼각산 바로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그물로 숭어, 망둥어 등 생선을 잡기도 했고, 청춘남녀가 모이던 곳이라고. 더불어 일제 강점기와 조선시대 당시에는 토지 측량의 삼각지점으로 사용했단다. 

삼각산 기슭에는 고(故) 이원영 훈장의 서당이 있었다. 생가는 현재도 보존 중에 있으며 인근 주변 마을 70세 이상 노인들 대부분이 이원영 훈장에게 교육을 받았다. 엄주산 노인회장 역시 이원영 훈장의 제자다. 엄 노인회장은 “어릴 적 서당에서 천자문, 명심보감 등을 배웠다”며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 20살까지 서당을 다녔다”고 말했다.  

황새골 북쪽에는 용머리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다. 용이 승천하다가 떨어져 죽은 곳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현재도 산 끝머리에 용의 무덤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 도원리사무소 및 경로당 현판을 걸고 있는 주민들

“90%가 복숭아 과수원?”

고도원은 복숭아 과수원이 밀집돼 있는 자연부락이다. 주민들의 90%가 과수 단지를 조성해 복숭아 농사를 지었다. 서정식 이장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과수원을 운영했다”며 “그 당시만해도 도원리는 해안마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1970년대 바다가 매립되면서 현재는 마을 전체가 육지가 됐다”고 덧붙였다. 

고도원에는 병풍처럼 펼쳐진 시우산이 있는데, 산 지형이 죽은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보이고 있어 그렇게 불리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때 바닷물이 들어왔던 곳으로 중이논과 장승백이 논은 바닷물이 들어올 때는 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농지 정리가 되면서 두 논은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 황새골 중앙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주민들이 함께 왕매실 생산 

한편 도원리 주민들은 50년 전 지자체 지원을 받아 마을공동묘지에 매실나무 500그루를 심어 주민들이 공동 재배하고 있다. 수익금은 마을회 운영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5년 전에는 왕매실나무로 교체 식수해 현재는 150여 주민이 왕매실을 공동 재배한다.

도원리 매실은 풍부한 일조량과 비옥한 토양에서 재배돼 무기질, 비타민, 유기산 등이 풍부하고 해독 작용이 뛰어나 배탈이나 식중독 등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이다. 또한 변비와 피부 미용에도 좋고 산도가 높기로 알려져 있다. 서정식 이장은 “현재는 이전보다 매실나무를 줄였기 때문에 소득이 약간 감소했다”며 “그럼에도 주민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더불어 도원리는 지난 5일 식목일을 기념하고 자연환경 보존을 위해 ‘녹색 환경 우리마을 사랑운동’ 사업의 일환으로 식목행사를 추진했다. 마을주민 80여 명이 마을 입구와 도로변에 황금회화나무 외 관목 18종의 묘목 370주를 심었다.

또한 부녀회원들은 꽃밭에 잡초를 정리하고 수선화와 라일락 등을 식재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번 행사를 통해 주민들이 화합해 송악읍 도원리가 아름다운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며 “주민들 모두 건강하게, 지금처럼 즐겁게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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