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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읍면소식
  • 입력 2022.07.29 21:35
  • 수정 2022.10.28 16:58
  • 호수 1416

[우리마을 이야기 9] 고대면 슬항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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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앞골 뒷산의 은빛 같았던 백로떼 사라져
비파 목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은 ‘슬항리’
석문방조제 건설로 바닷길 막히고 농경지 조성

<편집자주>
당진시에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 상황에 놓여 있는 마을이 있다. 본지에서는 마을의 전설과 옛 지명, 보호수를 비롯한 자연환경, 열녀문·효자비 등 다양한 마을의 이야기와 마을이 가진 자원을 발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으로 담아낼 계획이다. 해당 기사는 유튜브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해당 기사는 유튜브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석문면과 고대면 경계에 있는 슬항리는 지형이 현악기인 비파(비아)의 목과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비아목, 즉 슬항리(瑟項里)라 이름 지어졌다. 

조선시대까지 당진군 하대면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개편 당시 슬항·해촌·사암·마술 등 네 마을이 합쳐져 슬항리로 통합됐다. 고대면지에 따르면 이곳은 옥녀탄금형(옥같이 깨끗한 여자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는 뜻)으로, 명당이라고 한다. 

신현삼 이장은 “석문면과 고대면 사이에 위치한 슬항1리는 105가구 20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라며 “주민 화합이 잘 되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갈매울·장자울·탑상골 등 자연부락 

슬항1리에는 정겨운 이름을 가진 자연부락이 많다. 해촌은 슬항1리 동쪽 바닷가에 인접해 있던 마을이다. 슬항1리 남쪽에 위치한 삼갯들의 경우에는 개울 세 개가 흘러들어가는 들판이라는 뜻이다.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던 장재울은 산줄기가 양쪽으로 길게 뻗은 골에 이룬 마을이며, 갈매울이라고도 불리는 갈마(渴馬)울은 풍수지리상 목 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모양의 명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군량미를 보관하던 곳으로 알려진 군량골, 큰 돌탑이 있어 주민들이 제를 지내며 복을 빌었다는 탑상골도 슬항1리에 위치한 자연부락이다. 김홍철 노인회장은 “어렸을 때 들은 바로는 우리 할아버지 꿈에 신령이 나타나 어떤 곳을 파보라고 해서 실제로 거기를 가서 파니까 돌탑이 나왔다고 한다”며 “음력 정월보름날이면 주민들이 탑상골에 가 떡을 해서 제를 지냈다”고 말했다. 그는 “6.25전쟁 이후에 더 이상 돌탑을 사용하지 않아 동네 경계비 근처에 세웠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구술했다. 

 

백로 서식지였던 ‘헌곡’

백로가 많이 서식했다는 헌곡(軒谷)도 있다. ‘헌곡백로’라는 말은 말앞골 뒷산의 은빛 같은 백로떼를 의미했다. 말앞골·마락굴·마루골이라고도 불린 이곳은 예부터 백로 서식처가 형성돼 매년 4~6월경 이곳에 백로 떼가 날아와 큰 나무 높은 곳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 새끼를 까 수백 마리의 백로가 집단으로 서식했다고 한다.

그 광경이 매우 장관이었는데, 고대면에서는 헌곡백로를 고대팔경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백로 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주민들은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백로가 떠났다고 추정했다.  

이밖에 양산골, 남산원, 세귀뱀이, 금봉다리, 복주깨산, 종지깨산, 밀펀재, 음산말 등도 모두 슬항1리의 자연부락 이름이다. (고대면지 참고)   

헌곡백로 뿐만 아니라 슬항1리는 새와 인연이 깊다. 김희천 전 이장에 따르면 이곳에 살던 차만기 전 충남도의원이 아들을 낳았는데, 학이 뒤뜰에 앉았었다며 그의 아들이 이름을 ‘종학’으로 지었다고 전했다. 학 뿐만 아니라 황새도 많이 날아들어 한때 ‘황새마을’ 조성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흐지부지 됐다고. 이밖에 왜가리, 해오라기, 따오기 등 많은 새가 슬항1리를 찾아온다고 말했다. 

 

고성 김씨 집성촌 

한편 당진천이 바다로 흘러나가는 하류지역이었던 슬항리는 과거엔 마을 안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당시엔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도 많았지만, 석문방조제가 건설된 뒤에는 바닷길이 막히고 농경지가 조성되면서 주로 쌀을 생산하고 있다. 이밖에 황토고구마와 감자 농사를 짓는 주민들도 많다. 또한 전통삼베도 이곳에서 많이 생산되기도 했다. 

슬항1리는 고성 김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주민의 70% 가량이 고성 김씨란다. 김홍철 노인회장은 “전라도 고성을 본으로 하는 성씨인데, 600년 전부터 고성 김씨 삼형제 중 일부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이루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슬항1리에는 80년 역사를 지닌 슬항감리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슬항감리교회 교인으로, 마을주민들의 신앙적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주민 화합 최고!  

대대로 이곳에 살아오면서 함께 신앙생활을 이어온 주민들은 여느 마을보다 화합이 잘 된다는 점을 가장 큰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 끈끈한 우애를 바탕으로 우리마을 사랑운동 등 마을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주민 대부분이 고령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나할 거 없이 새벽부터 나와 꽃밭을 가꾸거나 환경정화활동에 나선다. 김수동 지도자는 “마을을 가꾸고 마을회관을 관리하는 일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고 있다”며 “마을에 일이 있을 때면 80~90세 노인까지 주민 대부분이 나와 참여한다”고 말했다.  

최연옥 부녀회장 또한 “마을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주민들에게 무척 고맙다”면서 “주민들과 함께 한다면 황소라도 때려잡겠다 싶을 만큼 단합이 너무 잘 된다”고 말했다. 

“평화롭고 행복한 마을이지만 젊은이는 줄고 고령화가 심각해져 걱정입니다. 어르신들을 비롯해 마을주민들 모두 건강하길 바랍니다. 고마운 마음 뿐이예요.” (신현삼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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