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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26 1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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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재래식 생강굴…대책 마련 절실”
송악읍 영천리 생강굴 들어간 농민 질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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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6m 내려가면 개미집처럼 생강저장소 나와
생강 숙성 또는 부패 과정 가스 발생…산소 부족
신문지 태워 산소 여부 확인 “요즘 같은 세상에…”
“대부분 영세농…정부·지자체 나서 저장고 지원해야

“영세한 농민 개개인이 저온저장고를 설치할 여력이 안되니 아직도 이렇게 위험한 재래식 굴을 이용하는 겁니다. 저온저장고 지원사업이 있다고 해도 자부담 비용도 만만치 않고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요. 이대로 뒀다간 생강 농사를 짓는 농민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생강굴에서 주민이 죽었어요”

지난 24일 새벽 2시, 기자의 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송악 영천리 주민 생강굴에서 질식 사고로 남편 사망. 아내는 대전 건양대병원으로 이송. 사고방지대책 및 생강굴 이용실태에 대해 취재 부탁드립니다.”

날이 밝은 뒤 찾아간 사고현장의 생강굴은 상상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광산 갱의 입구와 같이 동굴 입구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주민들이 보여준 생강굴은 지하로 깊게 뚫린 ‘구멍’이었다. 굴 입구를 막아놓은 나무판자와 부직포를 걷어내자 직경 1m 정도의 구멍이 나왔다. 지하로 내려가는 사다리도 없어 어떻게 이곳에 생강을 보관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 벽면에는 다리를 크게 벌려 발을 디디며 내려갈 수 있도록 작은 홈이 여러 개 패여 있다. 그렇게 지하 5~6m 가량 내려가면 양옆으로 긴 통로가 나오고 개미집처럼 방을 만들어 생강을 보관한다. 생강굴에 내려갔다가 질식해 목숨을 잃은 A씨(62)는 20년 넘게 생강농사를 지으면서 이렇게 자신이 수확한 생강을 보관했다가 판매했다. 

남편 찾아나섰던 아내도 질식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A씨는 비온 뒤 생강이 썩지 않았는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생강굴에 혼자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밤늦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 B씨는 남편을 찾아 나섰고, 생강굴 입구에 놓인 남편의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B씨는 119에 신고한 뒤 남편을 찾기 위해 생강굴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내도 이내 질식해 쓰러졌다. 사망한 남편을 본 충격과 부족한 산소 탓에 실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굴에 들어가기 전 미리 연락했던 119구조대에 의해 저녁 8시 30분 무렵 구조됐고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의식을 되찾았지만, 아내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어야 했다. 

숙성 거쳐야 판매…가스 배출 많아

생강은 수확 후 11~12℃ 정도에서 저장해 숙성해야 뿌리가 아물어 판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숙성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한다. 만약 습기와 고온에 의해 부패할 경우에는 더더욱 많은 산소가 소모된다.

때문에 생강굴에 들어가려면 굴 문을 3시간 가량 열고 충분히 환기시킨 뒤에 들어가야 하지만, 굴 문을 오래 열어두면 여름철 높은 기온이 굴 안으로 들어가 생강이 썩기 십상이다. 따라서 여름철에 충분히 환기시키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농민들은 입을 모았다. 

 

 

굴에 가스가 차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도 매우 원시적이다. 신문지에 불을 붙여 토굴에 넣었을 때 불이 꺼지면 산소가 없는 상태이고, 불이 붙어 있다면 산소가 있다는 뜻이어서 굴 안에 들어 갈 수 있다. 이런 재래식 생강굴이 송악읍 영천리에만 7개가 있으며, 10개 생강농가가 약 12~13만 평에 이르는 생강농사를 짓고 있다. 

생명 위협하는 재래식 생강굴 

생강굴 사고는 생강농사를 짓는 타 지역에서도 꾸준히 발생해 왔다. 질식사 뿐만 아니라 굴이 무너지는 사고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주민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영세농민을 위한 공동 저온저장고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병배 영천리 이장은 “대부분 나이들고 영세한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며 “농민 개개인이 저온저장고를 마련하는 것은 비용문제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농업이 기계화 되고 스마트농업까지 이뤄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수많은 생강농가가 이렇게 열악한 재래식 토굴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마을 또는 영농단지 별로 공동 저온저장고를 지원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남기정 씨는 “20년 넘게 생강농사를 지은 베테랑 농민도 이렇게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며 “지금과 같이 방치된다면 생강농사를 짓는 농민 누구나 이런 사고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는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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