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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8 21:42
  • 수정 2022.11.08 09:04
  • 호수 1428

[어르신 영상 자서전 ‘학교 가는 길’ 5] 고된 인생 끝에 찾아온 행복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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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모살이·소녀공·시집살이까지 고생했던 젊은 날
가족들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으로 한평생 살아와
학교 다니는 즐거움…“난타 수업 가장 재밌어”

임명자 씨는 1955년 정미면 천의리에서 태어났다. 위로 오빠 둘, 아래로 동생 둘, 5남매 중 가운데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배움의 기회마저도 다른 형제들을 위해 양보해야 했다. 넉넉지 않았던 살림에 할머니는 둘째오빠를 가르쳐야 한다면서 임명자 씨에게 “지지배니까 돈 벌어라”고 했단다. 
엄마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며 “내가 못 배웠으니 너라도 배워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고, 학교에도 보내려 했지만 시어른의 뜻을 막지 못했다. 어렵사리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책가방을 빼앗아 갔다. 결국 1학년만 겨우 마치고 더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9살에 서울로 식모살이 가  

아직 보호가 필요한 어린 아이였음에도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겨울에는 얼음장을 깨고 차디 찬 물로 빨래를 해야 했다. 그러다 동네 어른이 서울에 가면 밥도 잘 얻어 먹고 괜찮을 거라면서 서울에 데려다 줬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식모살이를 하며 갖은 고생을 했다. 연탄보일러를 뗐던 시절, 식모로 얹혀살던 주인집 식구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잠을 잤고, 임 씨는 차가운 맨바닥에서 얇은 이불 하나 깐 채 추위에 벌벌 떨며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그의 나이 고작 9살이었다. 
임명자 씨는 11살에 서울을 떠나 대전으로 내려갔다. 과자공장에 취업해 막대사탕을 만들었다. 공장에서 먹고 자면서 소녀공 생활을 했다. 그래도 찬물에 빨래하고, 찬 바닥에서 자던 식모살이보다 나았다. 그렇게 공장에서 일해 모은 돈 대부분을 집으로 부쳤다. 공장에서 6년 정도 일하다 보니 문득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임 씨의 전보를 받은 아버지는 곧장 대전으로 왔고, 당진과 대전을 몇 번이나 오간 뒤에야 “집으로 가자”고 말씀하셨다. 
“배운 것도 자꾸 까먹어”

▲ 남편과 제주도에서

고향에 돌아온 뒤 같은 마을에 살던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생활도 쉽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기에, 큰아이를 낳자마자 한 달도 안 돼 일을 시작했다. 이웃의 소개로 일하러 간 집 방에 아이를 뉘여놓고 밖에 나가 농사일을 했다. 몸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일하면서 하혈을 해, 다리를 타고 흐른 피가 신고 있던 고무신에 가득 고였다. 물지게를 지고 물을 뜨러 가면 수시로 넘어졌다. 지독한 가난과 시어머니의 시집살이 등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당진시대 신문을 읽고 있는 임영자 씨

아들 둘, 딸 둘을 낳아 키우고 나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이웃주민의 제안으로 해나루시민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임명자 씨는 “공부 배우러 다니니까 너무 신나고 재미나더라”며 “남들과 달리 배운 것도 자꾸 까먹고 외우지 못해 부끄럽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고생을 한데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지만 빈 유모차에 의지해서라도 그는 학교로 향한다. 선생님이 앞서 읽으면 뒤따라 읽으면서, 더디고 느리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머릿속에 새겨넣기 위해 늦은 나이에 애 쓰는 지금이 싫지만은 않다. 

▲ 임명자 씨의 학교 가는 길

<편집자주>
글을 배우지 못한 70~80대 어르신들은 가난한 집의 살림 밑천이었던 맏딸이었거나, 가방 대신 지게를 져야 했던, 학교 대신 갯벌로 나가야 했던 어린 소년·소녀였다. 해방 전후 태어나 6.25전쟁을 겪으며 사회적 혼란과 절대적 빈곤 속에 교육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 한 많은 시절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문해교육에 도전한 늦깎이 학생들의 인생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서글픈 시대와 역사가 오롯이 담긴 삶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또한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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