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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똥으로 시작되는 생명농법 이야기

유기농업의 선구자 정광영 씨 김태숙l승인2001.09.10 00:00l(3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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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초제없이 퇴비로’ 15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다

아이들 책에서 본 재미있는 똥 이야기다.
어느 날 아이가 배가 아파 뒷간에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먼저 들어간 고모가 나오지를 않았다. 사정이 급해진 아이는 “똥은 절대 남의 집에서 누어선 안된다”던 평소 할머니의 엄한 영을 어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후닥닥 옆집 뒷간에서 볼일을 마친 후련함도 잠시, 집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이는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에게서 부지깽이로 실컷 얻어맞았다. “이눔아, 그 귀한 똥을 남의 집에다 퍼주고 오면 어떡허냐!” 날마다 골목골목 뒤져 사람똥 개똥 할 것 없이 주워 모으던 할머니, 괜스레 참거리를 마련해 이웃을 쭈욱 불러 앉혀놓고는 똥이 마려울 때까지 하염없이 우스개소리를 늘어놓아 한사람 똥이라도 제집 화장실에 받으려고 여념이 없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 있어서 똥을 남의 집에다 눴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참 우습지만 우리 세대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컴퓨터공학과 고도의 사고활동을 하면서도 우리인간이 여전히 자연의 소박한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똥이 아닌가 싶다. 날마다 자연의 어딘가로부터 온 음식을 먹고 우리 몸의 작은 우주를 돌아 도로 자연계의 어느 지점에다 내어놓는 배설물. 그 장소가 옛날처럼 땅이라든가 밭뙈기라든가 큰 들통 위에 널빤지 두 개를 얹은 재래식 칫간이 아니어서 똥의 의미를 잊었을 뿐이다. 똥을 한갖 쓰레기로 여겨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수세식 화장실은 “자연에게서 받은 것을 자연에게 돌려주는 인간의 깎듯한 예의가 똥”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을 먹고는 그만 입을 싹 닦고만 셈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예의에서 벗어난 거리만큼 우리는 우리가 자연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똥을 환경생태적으로 보면 생물계 순환과 소통의 정점에 있다. 배설은 한가지 작은 순환의 끝이지만 또다른 순환의 시작이다. 동물의 배설물은 식물의 자양분이고 식물은 동물의 먹을거리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자연의 이치다. 그래서 요즘 생명운동의 한 테마는 자연계순환의 회복이다. 어느 절에서. 어느 공동체에서 인분을 퇴비로 쓴다는 얘기는 냄새가 나도록 고마운 이야기다. 이러한 순환의 회복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건강성을 회복하려는 것이므로.
신평면 매산리에 사는 정광영(58세)씨도 이 순환의 원리에 기초해 농사를 짓고 있다.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비롯한 일체의 농약을 쓰지 않아 유기농법, 무공해농법이라고 불리는 이 방법으로 정씨부부가 농사를 지은 지도 벌써 15년째.
요즘에 집 일부를 수리하면서 수세식 좌변기를 놓긴 놓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방객을 위한 것이다. 이게 웬일이라니...... 멀리서 가까이서 찾아오는 친지나 손님들도 모두 수세식 좌변기에 익숙한 터라 이 집의 뒷간이 무척 고집스러워 보였는지 하나같이 혀를 찼던 것이다. 어려서 잘 버티더니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도 냄새나는 거기에 쪼그리고 앉기를 불편해 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커다란 발효통을 아래에 묻은 재래식 뒷간을 그대로 두고 부부는 현관문 넘어 뒷간 가는 일을 결코 수고롭게 여기지 않는다. 남의 집 뒷간에 귀한 똥 퍼주고 왔다고 손주녀석 나무란 할머니처럼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두 내외 선에서는 말이 없어도 칼 같은 약속이다.

한 6개월 정도 잘 묵혀서 실한 거름이 된 분뇨는 순리대로 땅으로 돌아간다. 화학비료 대신 오랫동안 자연산 퇴비를 먹고 살아온 이곳 땅은 땅을 볼 줄 모르는 우리 눈에도 어딘지 달라 보인다. 기름지고 붉고 폭신폭신해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제초제의 맹독성이 닿지 않은 지 벌써 15년이 다 된 논에는 거미와 같은 이충과 개구리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8월 이맘때 농사터를 뒤덮는 벼멸구를 다른 농가들이 농약을 뿌려 죽이는 동안 이 집에서는 거미떼가 자연 해결해준다.
물론 샅샅이 농약을 뿌리는 것에 비하면 거미에게 맡기는 것이 허술하긴 하다. 그래서 간혹 멸구에 희생당하는 작물들도 생긴다.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작물의 생산량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이처럼 덤비는 병충해를 농약처럼 싹쓸이 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다. 그러나 땅의 ‘자연 치유력’이라는 것을 정씨는 믿게 되었다.
1987년 카톨릭농민회 안에서 생명운동이 제기되어 이 모험을 단행하게 된 정씨는 첫해에 수확량이 2/3나 떨어지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그 해에 모심고 나서 부부가 한달 내내 김을 맸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진이 빠진다. 부인과의 갈등도 적지 않았다. 그만둘까 하는 고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차츰 이 농법에 적응이 되어 가면서 땅도 땅심을 북돋아갔다. 대견하게도 지금은 일반 수확량의 85%까지 회복했다.
뭐니뭐니 해도 유기농법의 어려움은 풀베기에 있다. 몇번 제초제를 뿌리면 될 일을 일일이 김을 매줘야 하기 때문에 일손 감당이 어려운 것이다.

유기농법을 쓰는 데는 생산비가 많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김매는 수고로움 뿐만 아니라 다수확을 목적으로 하지않고 땅을 돌보고 작물의 자연적 싱싱함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정광영씨의 경우 화학비료 대신 유기질 비료와 쌀겨를 쓰는데 쌀겨는 거름역할과 잡초생육을 억제하는 이중효과가 있다. 1,100평을 경작하는 데 비료값이 10만원이라면 정씨의 경우는 유기질비료와 쌀겨값으로 25만원 가량을 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씨 부부는 매번 그나름의 기쁨을 수확한다. 일반쌀 가격이 80㎏ 한가마에 17만여원인데 비해 정씨부부가 완전 무공해로 생산하는 쌀은 같은 분량에도 22만8천원을 받는다. 유기농법으로 재배되는 쌀은 주로 한살림공동체나 카톨릭농민회와 같은 통로를 통해 완전유통되고 소비자와 직거래되기 때문에 애쓴 만큼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정씨의 더 큰 보람은 다른 데에 있다. 땅을 돌보고 사람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으로서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자부심이다. 매해 수확 때가 되면 그만둘까 하다가도 새해가 밝으면 아니지, 이게 옳지 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15년을 변함없이 보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하다.
“유기농법이 농민문제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소농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당당함을 지킬 수 있고 가격도 보장이 되니까요. 제가 먹기에도 최상인 농작물을 소비자에게 판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 아니겠어요?”
정광영씨는 자신을 한번도 환경운동가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지만 그동안 ‘똥’에서 시작하는 생명농업과 자연세제 쓰기, 자원 아껴쓰기, 우리농산물 먹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는 정직한 농민이자 새로운 시민이다. 15년에 걸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김태숙  tskim@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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