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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26 1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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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위한 습작 - 허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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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위한 습작

물안개 자욱한 새벽 골짜기. 노루가 목마름을 달래고 있다. 산토끼 발자국은 마른 풀섶 서걱임이 덮어버린다. 야생수들은 제마디의 길을 가지고 있다. 다른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 피아골 계곡에서 황홀한 자살처럼 얼어 죽었다는 연소한 빨치산의 전설도 풍경의 한 부분이다. 그의 손이 최후로 잡은 것은 총이 아니라 비탈을 흐르는 맑은 물이었다. 엄동설한, 푸른 낙엽처럼 사라진 그의 꿈을 함박눈이 묻고 있다. 물푸레나무 거무스름한 잔가지 끝에서 역사는 아직도 목쉰 고함소리를 지르고 있다. 사상이 없는 풍경은 슬픔처럼 아름답다. 눈부시게 아름답다. 프란츠 슈베르트. 흰 눈은 달빛처럼 얼고 있다. 겨울의 음악, 지리산.

허만하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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