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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26 1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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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가의 작업실 7 서양화가 김경인 작가
소나무 화백의 보금자리 ‘우송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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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의 시대를 그린 청년기
“여생은 나를 정리하는 그림 그리고 싶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랐다. 여름이니 망정이지 한겨울에 눈이라도 내렸다면 차에서 내려 꼬박 걸어 올라가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싫지 않다. 김경인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회색빛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향하는 문 같았다. 김경인 작가도 그랬다. 한때 격변의 시대가 그를 관통했으나, 이제는 순성면 성북리 어느 산골마을 언저리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오롯이 혼자 있는 이 시간이 좋아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잖아요. 이곳에서 소리 나는 것은 오직 새 소리 뿐이죠.”

혼자 있으되 답답하진 않은 모양이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그의 집이자 작업실 우송산방(右松山房)에서는 날이 맑으면 서해대교까지 내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확 트였다. 큰 느티나무부터 여름빛을 머금고 붉게 맺힌 방울토마토까지, 자연과 함께하는 것은 그리 외로운 일이 아니다. 이따금씩 바람이 머물다 가고, 나뭇가지에 보금자리가 마련된 새들은 친구가 된다.

▲ 김경인 작가의 작업실 내부.


전쟁 피해 당진에 터를 잡다

인천 출신인 김경인 작가는 1941년에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포화를 피하기 위해 가족들과 숨어들어온 곳이 당진이었다. 당시 대덕리에 정착하면서 당진중학교에 입학했고, 코밑이 거뭇거뭇해질 때 즈음 우연히 잡지에서 서울예술고등학교가 소개된 기사를 보고 입학시험을 치렀다. 입학 당시 서울예고 미술과 18명 중 단 3명만이 남학생이었는데, 김 작가가 그 중 한 명이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졸업한 뒤 서울 도심에 작업실을 마련했지만 자연을 늘 그리워했던 그는 소음과 먼지로 인해 서울에 오래 머물진 못했다.

그러나 1970~80년대의 한국사회는 도심의 먼지와 소음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어지러운 시대였다. 당시 김 작가는 세태를 반영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사람의 가치, 노동의 가치, 예술의 가치는 발아래 있었다.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말은 생경했고 청년들은 머리칼 하나 조차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다. 억압이 난무하던 시대에 그는 그림을 통해 탈출구를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때때로 그와 그의 그림은 정치적으로 해석됐고 작품을 빼앗기거나 전시가 금지되기도 했다. 당시에 많은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칫 ‘어디론가’ 끌려갈 뻔 한 위기도 겪었다.

▲ 1981년도에 그린 J氏의 土曜日(J씨의 토요일)

시대를 그리다, 민족을 그리다

1990년대에 들어 김 작가는 민족사와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천착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기질을 생각하다 보니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김경인 작가는 “소나무는 한국인의 심성과 닮았다”며 “직선적이고 남성적인 면과 부드러우면서 유연한 여성적인 면이 공존하는 소나무에는 한국인의 춤사위가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1993년 강원도 정선에서 처음 그리기 시작한 소나무 작품으로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고, 그 이후로 ‘소나무 화백’이라고 불렸다. 김 작가는 그렇게 25년 동안 소나무만 그렸다. 이제 남은 생애는 제3의 세계를 그리고 싶단다.

“이제 나를 정리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고향처럼 살아온 당진에서 전시를 하고 좋은 곳에 작품을 기증하고 싶기도 하고요. 훗날 제 작품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당진에서 제 그림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 김경인 작가가 그린 소나무 작품

>> 김경인 작가는

- 1941년 인천 출생
- 인천 신흥초, 당진중, 서울예고 졸업
- 서울대학교 미대 및 동대학원 졸업
- 現 인하대 명예교수
- 효성여대·상명대·인하대 교수, 캘리포니아주립대 교환교수 역임 
- 개인전 11회
- 제1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카뉴 국제전(프랑스)
- 제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 및 초대전(조선일보) 등 기타 해외 전시 다수
-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수집심의위원 역임
- 제19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 제24회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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