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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5
강화도 어선, 맷돌포에 어막 짓고 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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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맷돌포구가 가장 번성했던 당시, 대부분의 어선은 강화도 등지에서 온 것이었다. 강화 사람들은 중선, 꽁지배들로 봄부터 초겨울까지 맷돌포구에 머물면서 고기를 잡았다. 이들은 주로 봄철에 준치를 잡고, 뒤이어 숭어·꽃게 등을 잡았다.

박상진(매산1리) 씨는 “맷돌포에 강화에서 준치 잡으러 온 꽁당배들이 많았다”며 “꽁지에다 그물 달았다고 해서 ‘꽁당배’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박 씨는 “준치를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서 자전거로 실어 날랐다”면서 “그때는 차가 없으니까, 어쩌다 짐차 1~2대가 와서 실어 가고 나머지는 다 자전거로 실어 날랐다”고 말했다.

차준희(매산1리) 씨는 “강화 사람들이 맷돌포에 자그마하게 집을 지어 살면서 고기를 잡고, 조업기가 끝나면 강화로 돌아갔다가 봄이 되면 다시 오곤 했다”고 말했다.

최순섭(부수리) 씨는 “(강화 사람들은) 움막 같은 걸 짓고 임시로 고기 잡는 철만 살다 갔다”며 “배 하나에 집 하나 꼴이었으니 십여 척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에 의하면 해방 전후에 고기잡이에 종사하는 주민 2호가 거주하였을 뿐이고, 강화도 등지의 어민들이 고기잡이철에 일시 머무르는 어막이 약 15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어막은 방과 부엌 1칸으로 된 구조였으며 어민들이 이 중선 및 꽁지 배를 이용하여 고기잡이를 했다고 한다.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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