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없다. 사람은 앞으로 보내야할 시간을 뜻깊게 사용하기 위해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한다.그렇다고 인생에 교과서 처럼 모범답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뒤를 돌아봤을 때 조금이라도 후회를 하지 않는 이는 없을 거라 생각된다.첫 번째 사진은 울릉도에 놀러가 찍은 사진으로 기억된다. 장고항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내게 바다
첫 번째 사진은 대학 후배로 만난 아내(최윤경)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RCY 적십자 서클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 갔다. 이후 우리는 1992년도에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의 배경은 충남대학교 내 백마상이다.두 번째 사진은 충남대학교 수의학과 동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사진 우측 두번째)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학창시절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그립기만한 시
추억이 될 만한 사진을 고르자니 고민이 많이 됐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해도 될 내용일지,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하며 과거의 추억을 곱씹어 봤다.많은 추억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세월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살아 온 발자취가 사진 한 장마다 고스란히 배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첫 번째 사진은 딸(강정아)과 함께 석문면 장고항 부근에서 찍은 사진으
오래된 사진첩 속에 고이 간직된 소중한 추억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생한 추억으로 다가온다.바쁘게 살아온 시간이지만 가족, 지인들과 함께한 시간을 감사히 여기며 항상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첫 번째 사진은 유곡초등학교 4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좌측 두번째 꼬마가 바로 나다. 어린 시절과 지금은 너무도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친구들도 어느세 성인이돼 한 가정에 어엿한 가장이 됐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좌측 첫번째 친구는 송재중, 우측 첫번째 친구는 김진영으로 당진에서 장비업체를 운영 중에 있어 자주 함께 만나고 있
젊은 시절의 추억이 담긴 사진은 고향집의 화재로 인해 잃어 버렸지만 아직도 기억은 생생하다. 한 여름 밤의 꿈만 같던 젊은 시절이지만 당시의 내가 있었기에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현재가 있는 거라 생각한다. 석문면 장고항리가 고향인 나는 고향집의 화재 이후 현재 채운동에서 거주 중이다. 첫 번째 사진은 고향집에 살았던 당시 큰아들(권병서)와 함
나는 3살 때부터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했다. 하지만 주변에 나를 이해하고 함께 발을 맞춰주는 친구들이 있어 장애가 인생에 불편한 요소가 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친구들과의 추억이 아련해질 때 다시 사진첩을 들여다 보니 당시의 추억과 마음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첫 번째 사진은 당진상업고등학교(현 당진정보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때 소풍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재직당시 주한미군 철수 계획이 발표됐다. 당시 장인어른은 미군부대에서 근무를 해 미군이 철군할 때 같이 미국으로 가셨다. 그리하여 배우자초청과 자녀초청이란 제도로 처가댁 식구들은 미국 시민권자가 될 수 있었다. 나 또한 미국에서 살게 됐는데 그 당시는 미국에 있는 한국인이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천대받던 시기였다. 그래서 항상 주변 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이장을 역임했다. 이장을 하는 동안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생겨 많은 곳을 가게 됐다. 그 중 20년 전에 캄보디아를 방문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는 50년대 말 한국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예전 추억들이 떠오른다. 첫 번째 사진은 군입대 전 초락도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사진이다. 친구들과 사월 초파일에 모여 엠프를 빌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놀았다. 사진 속 장소는 지금의 대호방조제가 생기기 전의 초락도 모습이다. 그 당시는 바닷
결혼해서는 먹고 살기 바빠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 15년 전부터 남편과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은 1년에도 수차례 여행을 다니게 됐다.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하나를 꼽을 수가 없다. ‘그곳이 어딘데 멋있더라’라는 말보다 여행을 간다는 자체가 기분이 좋고, 가서 봤던 것들이 다 멋있다는 생각만 든다. 다음 여행지는 제주도
젊었을 때는 카메라가 없었다. 전기도 TV도 없던 시절, 사진이란 존재는 상상도 못하고 살았다. 마을에 TV는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참전용사가 가져온 한 대, 자전거와 라디오는 면사무소 다니는 직원 한명만이 소유하고 있었다. 많지 않은 사진을 찾아보며 가족과의 추억을 돌아보게 됐다. 첫 번째 사진은 결혼사진이다. 아내(윤주숙)와는 중매를 통해 만났다. 첫 만남에서 아내가 너무 예뻐 “나한테 시집와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취미가 무엇이냐, 학교는 어디 다녔냐 등의 일반적인 질문이 아닌 지금까지 살아왔던 이야기, 앞으로 삶의 계획
세월이 많이 변했다. 바다가 논이며 도로가 되고 나룻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고생해 가며 도착했던 곳이 이제는 자동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생활이 편리해지고 빠른 일처리가 가능해졌지만 당시의 풍요롭고 살갑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어졌다.첫 번째 사진은 1975년도 남편(슬항2리 김장식 이장)과 약혼식을 올릴 때 사진이다. 함께 교회를 다니던 친구이자
고스란히 간직해 둔 사진첩에서 사진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자세한 당시의 상황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느낌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첫 번째 사진은 결혼식을 마치고 친정인 서천에 처음 방문해 두 오빠와 두 여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는 장항선을 타고 몇 시간을 달려야 고향인 서천을 방문할 수 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사진첩을 뒤적이며 이런저런 사진을 보고 있는 동안 ‘이런 때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만큼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머릿속이나 가슴속으로는 얼마 지나지 않은 바로 어제의 일처럼 느끼지만 사람들의 모습이나 급속도로 발전해 버린 당진의 모습, 주변 풍경들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첫 번째 사진은 당진상업고등학교(현 당진정보고등학교) 재학 당시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것이다. 당진상고 24회 졸업생인 우리는 교내에서도 사총사로 불릴 만큼 친분이 두터웠다. 우측 2번째 줄에 위치한 학생이 바로 나다(우측
45년 교직생활을 돌아보니 당진의 여러 학교를 다니며 많은 제자들과 사람들을 만나고 지냈던 것 같다. 아내(이효성)와 함께 교직에 몸담으며 학생들의 학업신장 및 과학, 문화, 체육교육에 힘써왔다. 길었던 교직 생활을 통해 교육자로서 큰 보람을 얻을 수 있었다.지금은 교단에서 물러나 대한노인회 당진시지회 감사 및 대한노인회 합덕읍분회 분회장, 우강노인대학 교
정지된 사진 속 순간에는 이야기들이 흐른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옛 추억들이 다시 살아서 움직인다. 첫 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앳된 얼굴. 소위로 갓 임관했을 때가 겨우 스물 네 살이었다. 강원도 철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해 충무(지금의 통영), 연천, 진해, 인제, 오산을 거쳐 전역했던 홍천에 이르기 까지 전국 팔도에 수 십 번씩 근무지를 옮겨 다녔다. 덕분
세월은 빠르게 지나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의미있게 보내느냐는 각자에게 주어진 숙제다. 첫 번째 사진은 20대 초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당진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상경했던 나는 공장에 취직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고향을 다시 찾은 나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했다.마을 친구들과도 다시 재회해 서로 농사일도 돕고 고
사진첩을 훑어보니 젊은 나이에 시집와 힘든 농촌 일에 고생하고 산다는 생각을 갖고 억울해 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래도 사진첩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를 웃음 짓게 만드는 추억들이 곳곳에 있어 나름 ‘좋은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첫 번째 사진은 남편(이응학)과 결혼식에 앞서 약혼을 맺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남편의 고향인 우강면에 정착해 반평생을 넘게 살아온 나는 지금에서야 당시의 젊은 나이를 조금 더 즐겼어야 했다는 아쉬운 생각을 갖는다. 지금 같은 세상에 20대 초반에 중매를 통해 결혼을 결
사진첩을 둘러보니 문뜩 세월이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속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현실에서는 모든 게 변해 있다.42년간의 공직생활도 마감하고 아내와 함께 남은 여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던 때 다시 한 번 내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첫 번째 사진은 조부모 회갑 때 화가가 직접 방문해 그린 그림이다. 얼핏 보기에는 꼭 오래된 사진 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이다. 당시에는 사진기도 없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사진을 찍을 상황에서는 화가들이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비록 내 추억이
마냥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의 내가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활에서 떠난 화살처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이제는 추억이 된 옛 사진이지만 나에게나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나 소중한 기억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첫 번째 사진은 현재 당진병설유치원 교사로 근무 중인 친구(김영진, 사진 우측)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시 당진여고를 다니던 나와 친구는 어버이날 행사 겸 체육대회에서 가장행렬에 참여했다. 행사를 마치고 항상 입어오던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상황을 기념해 찍은 사진이다.족히 30년이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막상 오래 전에 찍었던 사진을 사진첩에서 꺼내어 보니 이런 때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그동안 인삼농사를 지으며 고산초 학부모회, 고대면엄마순찰대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다보니 아내로서 부모로서 소홀하지는 않았나 생각된다.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처럼 내가 잘하고 있는지 고민이다. 아무 불평없이 나와 함께 해주는 남편과 큰 걱정 끼치지 않고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내로서 부모로서 우리 가족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첫 번재 사진은 남편(김장환)과 결혼식을 마치고 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