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진첩을 보니 느낌이 새롭다. 특히 한보철강을 다니던 때 사진을 보니 남다른 기분이 들었다. 부도 때문에 야근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회사를 정상화시키려고 팀원들이 더 단합했던 것이 생각난다.첫 번째 사진은 군대에 있을 때 찍은 것이다. 나는 32사 98연대 2대대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이 사진은 1991년 6.25기념 특공무술 시범을 하고나서 다같이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장소는 현재 당진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는 구 군민회관 앞. 맨 왼쪽 중대장님 옆에 안경을 끼고 있는 것이 나다. 나는 도복이 아닌 군복을 입고 있
사진을 고르다보니 대호지에서 찍은 사진이 많았다. 원래 고향이 대호지면 송전리이긴 하지만 송전리에서 찍은 것은 별로 없었고 대호방조제나 출포리 등지에서 찍은 것이 많았다. 예전 사진을 보며 농촌사회였던 당진이 많이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대호방조제에서 찍은 것이다. 1993년 8월 15일 광복절에 아이들과 바람 쐬러 나갔다가 찍은 것으로 방조제 한 가운데 앉아 낚시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인다. 고기를 많이 잡지는 못했지만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던 기억이 난다. 두
지금은 체중을 많이 감량했지만 예전에 나는 거의 0.1톤에 달하는 거구였다. 오랜만에 사진첩을 꺼내니 가장 살쪘을 당시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이 생각났다. 너무 살쪄서 튜브가 몸에 꼈던 것을 찍은 사진인데 막상 찾으려고 하니 보이지 않았다. 너무 재밌어서 가족들에게 잘 보관하라고 했는데 이번에 그 사진을 찾지 못해 아쉽다. 첫 번째 사진은 2005년 중국 내륙 쪽으로 여행갔을 때 찍은 것이다. 12쌍이 부부동반으로 같이 갔는데 국내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를 차를 여러번 갈아타며 여행했다. 아내와 함께 설산
산을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당진은 물론 전국의 산을 찾아 다니며 등산을 즐기고 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산을 타기 시작했으니 정말 오래됐다. 특히 IMF때는 사업도 잘 안되고 몸도 안 좋아져서 산을 많이 찾았었는데 이젠 선발대로 산을 오를 만큼 건강이 회복되었다. 첫 번째 사진은 지난해 백두대간 종주 때 설악산 중청에서 찍은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는 가
젊었을 때 사진을 보니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친구들과 이곳저곳 참 많이도 다녔던 것을 사진 속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수덕사에서 찍은 친구들과의 단체사진을 소개하고 싶었은데 흔들리게 나와 아쉽게도 빼버리게 되었다. 사진을 보니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해보고 싶어진다. 첫 번째 사진은 2006년 6월경 태안으로 낚시를 하러갔다 찍은 것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기분 전환 겸 낚시를 다니곤 하는데 이때는 학암포를 갔었다. 당시 운 좋게도 나는 월척을 건졌는데 비공식이지만 전국에서 제일 큰 우럭을 잡았다. 몸무게가 4㎏, 몸길이가
취재 요청을 받고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린 사진은 정작 내 사진이 아닌 아버지의 사진이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서울의 고등학교를 나와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도 하셨던 내 아버지. 천의초등학교에서 십년 넘게 교육자로 생활하셨던 아버지의 사진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사진은 남산에서 찍은 것이다.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니 70년대 중반 쯤이다. 곳곳에 나무가 심어지고 팔각정이 만들어지던 남산 초창기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당시 아직 공사 중이었던 관계로 사진 속 남산의 모습은 지금과 달리 황량하기 그지없다. 두
갑작스레 취재 연락을 받고 사진집을 꺼내들었다. 내 사진을 고르려고 했는데 아내의 사진도 재밌는 것이 많아 같이 골랐다. 호서고등학교 밤절제 축제, 당진읍 구 시장, 삽교천 등 지금과 다른 과거 풍경을 사진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아내 이정숙(41)의 것이다. 1982년 호서고 밤절제 때 모습을 담고 있는 흔치 않은 사진이다. 당시 인기 많았던 한 개그프로를 선보이고 있는 중인데 재미있게도 아내는 축제 전날 연락받고 대타로 출연하게 됐다고 한다. 갈색 코트를 입고 있는 것이 아내로 당시 대사 몇 마디 못했지만 좋은
내가 사진을 잘 찍지 않은 탓인지 사진집을 보니 내 사진이 정말 많지 않았다. 또한 일에 쫓기다보니 가족과 같이 여행가서 찍은 사진도 별로 없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첫 번째 사진은 23년전 둘째 남동생의 탑동초등학교 졸업식 때 찍은 것이다. 어머니, 두 남동생과 학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탑동교에서도 한 장 더 찍었다. 두 사진 모두 뒤로 보이는 풍경들이 많이 변한 것이 눈에 들어오며 졸업식이 끝나고 지금은 없어진 이교다리 쪽 중국집으로 자장면을 먹으러 갔던
경찰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사진을 보니 그동안 주변 환경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 복장이나 경찰서 풍경 그리고 당진의 모습이 많이도 변한 것 같다. 첫 번째 사진은 1979년 대호지우체국 직원들과 서산의 개미사로 야유회 갔을 때의 것이다. 모자 쓴 사람 옆에 있는 것이 나다. 경찰이 되고 처음 대호지에 발령받았는데 이때 경찰서는 우체국과 이웃하고 있었고 서로 왕래가 잦아 친했다. 사진을 보면 지금의 야유회 모습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는데 30년전 야유회는 이랬다. 두 번째 사진은 1991년 구 당진경찰서에서 찍은 것이
시간의 흐름 탓도 있겠지만 예전 사진을 보니 당진이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70년대가 다르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던 80년대가 다르고, 또 지금도 다르니 말이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면 또 달라지겠지. 첫 번째 사진은 당진상고 3학년 때 구룡리 칼바위산으로 소풍가서 선생님, 학우들과 함께 찍은 것이다. 하얀 모자에 선글라스를 쓴 선생님 뒤에 있는 것이 나다. 우리가 포즈를 취하기 위해 올라탄 저 칼바위산과 앞 쪽에 있었던 포도밭은 아직도 남아있지만 아쉽게도 뒤에 보이는 대지는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
남편(박영호 당진군 해양수산과장)과 젊었을 때 여행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사진 대부분이 여행지에서 찍은 것들이다. 등산, 여행 등 남편과 취미가 같아 젊었을 때부터 이곳저곳을 참 많이도 다녔다. 첫 번째 사진은 가족끼리 제주도로 여행가서 찍은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외지에서 다녀서 같이 여행 다닐 기회가 적었는데 3년 전에 서로의 휴가를 맞춰 제주도에 다녀왔다. 뒤에 보이는 집이 눈에 많이 익을 텐데 바로 드라마 ‘올인’의 성당 촬영지라고. 두 번째 사진은 87년 여름 화양계곡에서 찍은 것으로 당시 개구쟁이였던 막내(박용주)의 모
사진 속 내 모습을 보니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나도 많이 변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까까머리 어린 시절에는 참 날씬했는데 중년에 접어들면서는 갑작스레 살이 붙었다. 지금은 마라톤의 힘으로 살이 많이 빠졌는데 새삼 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 사진은 2000년경 중국으로 여행 갔을 당시의 것이다. 딱 봐도 알겠지만 이때 나의 몸무게는 100㎏에 육박할 정도로 육중했다. 오른쪽에 있는 이경용(현 당진낙협 조합장)씨와 매우 대조될 정도인데 재미있게도 이젠 반대로 난 현저히 살이 빠졌고 이경용씨는 살이 붙어버렸다. 두 번째 사진
오랜만에 사진집을 꺼내들었다. 아내(이규옥,43)와 같이 사진을 골랐는데 한 장 한 장 다시 보며 자연스레 그 때,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되었다. 첫 번째 사진은 1982년 철마산으로 봄 소풍을 갔을 때의 것이다. 이 사진은 나와 아내의 첫 만남을 담고 있다. 당시 나는 고3이었고 아내는 1학년이었다. 우리는 문예부에서 만났는데 이 사진은 문예부원들끼리만 모여서 찍은 것이다. 맨 오른쪽에 회색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내 아내이고 쑥스럽지만 맨 왼쪽에 혀를 내밀고 있는 아이가 바로 나다. 두 번째 사진은 ‘조국 순례 대행진’이라는 일종의
젊은 시절 정말 자유분방하게, 재밌게 지냈던 것 같다. 그 시절 사진들이 많지 않았는데 그 사진들을 찾아보며 옛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됐다. 첫 번째 사진은 34년 전 19살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가운데 친구에 반쯤 가려져 있는 사람이 나인데 이 친구들과는 무척 절친한 사이였다. 이들과 자주 어울려 다녔었는데 저곳은 내장산이다. 학교가 끝나고 놀러가는 것을 즐겨 했던 이 친구들. 내장산에 가서 남긴 사진이 지금은 무척 소중한 추억이 됐다. 안타깝게도 우리들 중 가장 활발하고 자유분방했던 가운데 친구는 몇 년 전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
송산면의용소방대원으로만 23년. 그 중 대장으로만 9년. 송산기동순찰대 초대대장. 지금 돌이켜보면 내 삶은 늘 ‘지역사회’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 사진은 20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굴이 무척이나 젊어서 낯설 정도다. 저 당시의 모습은 말그대로 ‘훤하다’. 두 번째 사진은 송산면기동순찰대 초대대장으로 있을 때인 1988년 찍은 사진이다. 당시 왜 저렇게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는지... 당시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에서 기동순찰대 창립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송산면 기동순찰대도 창립했었는데 지역 선후배들의 권
첫 번째 사진은 벌써 42년전 사진이다. 늦둥이였던 나는 아버님이 47세 되시던 해에 태어났다. 내가 늦둥이이다 보니 내가 중학교 1학년에 다니던 때 아버님이 환갑을 맞으셨다. 딸만 셋 낳은 후 태어난 외아들이 나였다. 집에서 환갑 잔치를 하면서 아버님께 외아들이 술잔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아버님은 70세까지 사시고 돌아가셨는데 하루라도 빨리 손주들을 보고 싶으신 마음이 강하셔서 나는 대학 진학 대신 21살이라는 나이에 장가를 갔고 아버님 품에 손주들을 안겨드릴 수 있었다. 덕분에 내 또래에 5남매와 손자들을
사진첩을 들여다보다 귀한 사진을 찾게 됐다. 첫 번째 사진이 바로 그 소중한 사진인데 1960년 석문초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에서 열렸던 학예회에서 여러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지금 봐도 저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다. 연극을 했던 우리는 ‘파랑새의 죽음’이라는 극을 준비해 의상을 만들고 맹렬히 연습했었다. 난 저 당시 꽤 비중있는 조연을 맡았었다. 앞줄 맨 오른쪽에 서있는 녀석이 나다. 내 뒤에 서 계신 분은 담임 선생님이시다. 두 번째 사진은 내가 재건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할 때 학생들과 찍은 사진이다. 난 1968년부터 1975
예전 사진들을 보며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니 마치 자서전이라도 쓰는 기분이다. 첫 번째 사진은 1985년도 도 대회를 앞두고 유도부원들과 찍은 사진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뒷줄에 맨 오른쪽이 나다. 어릴 적부터 씨름, 야구 등 각종 운동을 많이 했었다.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타지역 고등학교를 진학하려다 가족들의 반대로 호서고등학교로 가게 됐다. 사진 속 친구들은 지금도 알고 지내는데 특히 뒷줄 맨 왼쪽은 송악중기 문성현인데 가장 친한 친구이다. 이때 도 대회에서는 단체전 1위를 했었다. 나는 유도를 하면서 도 대회에서
교직생활을 한 지 벌써 33년.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소풍이며 체육대회 등 행사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다. 아이들을 가까이 해서 그런 지 추억도 많고 나도 젊게 지내는 것 같다.첫 번째 사진은 1983년 10월에 반 아이들과 영랑사로 소풍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도 이제는 안경을 쓰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어떤 아이들인지 알아볼 만큼 세월이 흘렀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니 이 학생들은 지금쯤 40대 초반쯤 됐겠다. 명절이면 선생님과 술 한 잔하고 싶다며 연락하는 제자들이 있다. 아이들은 30~40대 젊은이들인지라 나 혼자
오랜만에 빛바랜 추억의 학창시절 사진 한 장을 보다가 기회가 되어 몇 자 적어본다. 첫 번째 사진은 1972년도 당진상고 3학년 재학시절 장고항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지금에야 모두 없어져 버린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른바 ‘풍선배’라 불렸던 돛배들이 무척 많았었다. 돛배 중 장고항에 정박해있던 돛을 내린 황포돛배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이가 구자찬이라는 친구다. 이 친구는 전에는 영등포구청에서 근무했었는데 지금은 한동안 연락이 없어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친